미국의 핵시설 타격 이후 이란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자 글로벌 주요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해협이 사상 처음으로 봉쇄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최악의 경우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대로 치솟고 한국의 원유 수입에도 비상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23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7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은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장중 배럴당 78.40달러나 치솟으며 전 거래일(73.84달러)보다 6.18%나 급등했다. 브렌트유 8월 인도분 선물도 장중 81.40달러로 뛰어올랐다. 국제유가는 이달 13일 이스라엘의 이란 기습 공격 이후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국제유가가 무섭게 뜀박질한 것은 이란이 호르무즈해협 봉쇄라는 극단적인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는 전망이 시장에 급속히 확산한 탓이다. 이란 의회(마즐리스)는 22일 미국의 자국 핵시설 폭격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호르무즈해협 봉쇄를 의결했고 이 안은 최고국가안보회의(SNSC)의 최종 결정만 남겨 뒀다. 호르무즈해협은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2010년대 초반 서방의 대이란 제재 때 각각 전면 봉쇄 위기를 맞았지만 완전히 차단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이날 X(옛 트위터)에 전쟁 관련 첫 공식 입장을 내고 “시오니스트 적(이스라엘)이 심각한 실수를 저지르고 엄청난 범죄를 자행했다. 응징당해야 하고 지금 응징을 당하고 있다”면서도 미국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호르무즈해협은 페르시아만을 아라비아해로 잇는 유일한 해로로 원유 수송에 있어 지정학적 중요도가 높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이 해협을 통한 석유 운송량은 지난해와 올 1분기 하루 평균 2000만 배럴에 이른다. 이는 전 세계 석유 해상 운송량의 25%에 해당하는 규모다. 전 세계 액화천연가스(LNG) 해상 운송량의 20%도 이 해협에서 운반된다. 한국도 중동산 원유의 99%를 이 해협을 통해 수입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쿠웨이트, 카타르, 바레인 등 중동의 주요 산유국은 호르무즈해협을 거치지 않고 석유를 수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지리적 특성상 이란이 봉쇄 작전을 펼치기도 쉽다. 해협은 수심이 얕아 대형 유조선이 지나갈 수 있는 해로가 한정돼 있는데 이는 대부분 이란의 영해에 분포하고 있다.
외신들은 이란의 국제사회 고립이 심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해협 봉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러시아의 경우는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이 22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모스크바를 찾았음에도 별다른 공식 발언을 내놓지 않은 채 이를 방관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우크라이나 전쟁 탓에 러시아에는 이란을 지원할 여력이 없고 유가 상승도 호재가 될 뿐이라고 진단했다. 중동의 실세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도 이란과의 경쟁 관계, 미국과의 우호적 관계를 고려해 전쟁에 개입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호르무즈해협이 원천 봉쇄될 경우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돌파할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놓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최고치였던 147달러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이란이 해협을 차단하지 않더라도 자국 원유 수출을 전면 중단하거나 이라크 내 미군 기지를 보복 공격하기만 해도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에 육박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호르무즈해협 초입에 들어서던 초대형 유조선 2척은 22일 이미 미국의 이란 폭격 직후 배를 비운 채 항로를 정반대인 아라비아해 방향으로 틀었다. ING그룹은 최근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연말에는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를 넘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상태가 급박하게 돌아가자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22일 중국을 향해 이란이 원유 수출을 중단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다만 이란 역시 경제적 목줄인 호르무즈해협을 장기간 봉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스티븐 쇼크 쇼크그룹 대표는 “이란의 최대 석유 수출 고객인 인도와 중국 두 나라에 피해를 줄 수 있기에 해협을 봉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J D 밴스 미국 부통령은 “이란의 전체 경제는 호르무즈해협을 통해 돌아가고 있어 봉쇄는 자살 행위”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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