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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다시보기] ‘입’에 대하여

심상용 서울대학교미술관장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교황 인노첸시오 10세 초상화’. 사진 출처=도리아팜필리미술관




‘교황 인노첸시오 10세 초상화’는 스페인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1650년께 그린 것으로 오늘날 서양미술사의 가장 탁월한 초상화로 평가된다. 프랑스의 예술철학자 이폴리트 텐은 이 초상화에 대해 “모든 초상화 중 단연 최고의 걸작으로, 한 번 보면 결코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이 초상화를 아일랜드 출신의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이 1953년 패러디해 그렸다. ‘벨라스케스의 교황 인노첸시오 10세 초상화 연구’가 그것이다. 이 그림에 대한 포스트모던 철학자 질 들뢰즈의 예찬론 성격의 해석으로 인해 원화와 패러디 모두 다소 갑작스럽게 유명세를 타게 됐다.



벨라스케스의 원화와 베이컨의 패러디에서 극적인 차이는 ‘입’의 표현에 있다. 벨라스케스의 것에서 교황의 입은 그의 냉철함 뒤로 숨긴 위선을 상징하기라도 하듯 굳게 닫혀 있다. 반면 베이컨의 것에선 입이라기보다는 누적된 비명을 토해내는 비정상적으로 확대된 구멍에 가깝다. 뭉크의 ‘절규’가 차라리 귀여울 지경이다. 알아볼 수 없게 뭉개진 얼굴에서 오직 그 구멍화된 입만이 세부까지 묘사된 기이한 치아들과 함께 살아 있다. 베이컨 자신도 다음과 같이 말하곤 했다. “나는 언제나 입 모양, 입과 치아의 형태에 몹시 감동을 받았다. (중략) 나는 입에서 나오는 빛과 색을 좋아한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벨라스케스의 교황 인노첸시오 10세 초상화 연구’. 사진 출처=디모인 미술관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의 크게 벌어진 입에서 언어들이 쏟아져나온다. 완력을 동반하는 변태적인 섹스, 염산을 뿌린 게 아닌가 싶을 만큼 뭉개진 피부에 각인되는 배신과 복수의 열망, 살인의 악몽을 동반하는 어두운 세계의 언어들이다. 존재의 심연에서 경쟁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그 언어들이 이 세계를 숱하게 중복되는 추락의 경로들로 만든다. ‘입’에 관한 한 2000년 전 예수의 말을 떠올려봄 직하다.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곧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로,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들이 바로 그것들이다. (중략) 악한 생각, 살인, 간음, 음란, 도둑질, 거짓 증언, 비방,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다.” 솔로몬의 지혜서와도 같은 맥락이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죄악과 속임이라 그는 지혜와 선행을 그쳤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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