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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자살은 진실? 혹은 거짓?

How did Hitler really die?

1945년 봄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독일의 패전은 기정사실화 됐다. 이에 절망한 히틀러는 베를린의 지하벙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의 죽음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적지 않다. 시신은 사실상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으며, 그의 것으로 알려졌던 두개골도 여성의 것으로 드러나는 등 의혹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정말 히틀러는 그때 자살했을까?


나치 독일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 그는 2차 세계대전 전까지 승승장구했지만 스탈린그라드 전투 등에서 구소련에 패하면서 어두운 나락의 길로 떨어진다. 그리고 1945년 4월 30일 베를린의 총통관저 지하벙커에서 아내 에바 브라운과 함께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히틀러는 권총으로 자신을 쏘았고, 에바는 청산가리 캡슐을 삼켰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히틀러의 나이 57세였다.

물론 권총을 쓰지 않고 음독자살했다는 주장도 있기는 하다. 2010년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의 후신인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중앙고문서보관소 소속 바실리 크리스토포로프 소장은 “사망 당시 히틀러의 입안에 유리로 된 캡슐이 남아있었고, 시신에서 악취가 난 점 등으로 미뤄볼 때 청산가리 중독이 사인일 수 있다”고 밝혔다.

총상 같은 치명적 외상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크리스토포로프 소장은 남아 있는 나치 세력의 영예를 위해 히틀러의 죽음을 자살로 위장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히틀러와 에바의 시신은 소련군이 화장시켜 벙커 위의 마당에 묻었다고 한다. 이후 스탈린의 지시에 따라 옛 동독 마그데부르크의 소련군 부대 내에 매장하고 턱뼈와 두개골 조각 등 유해 일부만을 현 러시아 문서보관국에서 보관하게 됐다고. 여기까지가 히틀러의 죽음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공식적인 기록이다.

그러나 이 스토리가 알려진 뒤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시신이 화장된 탓에 실제 히틀러의 죽음을 확증할 수 없다는 점, 또 소련이 히틀러가 자살했다고 공식 발표한 후에도 미 연방수사국(FBI)이 계속 그의 행방을 추적했다는 점 등은 죽음으로 포장된 이면에 뭔가 다른 진실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낳았다.







히틀러의 두개골은 여성의 것

1945년 5월 3일 독일을 함락시킨 소련군은 히틀러의 유해를 찾아낸 뒤 신원확인을 위해 히틀러의 주치의를 찾았다. 시신의 치아로 진짜 히틀러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주치의의 조수만 어렵사리 만날 수 있었는데, 그 조수를 통해 치아가 히틀러의 생전 치료기록과 일치한다는 확인을 받았다. 이렇게 소련군은 치아의 주인, 즉 총상이 있는 시신을 히틀러의 것으로 확신한 뒤 사인을 권총자살로 결론지었다. 이어 지난 2000년 히틀러의 두개골이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공개되면서 그의 죽음에 대한 논란이 종지부를 찍는 듯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논란은 재점화됐다. 2009년 미국 코네티컷대학의 고고학자 닉 벨란토니 교수와 유전학자 린다 스트로스보 교수가 러시아 당국의 허가를 받아 총알구멍이 있는 히틀러의 두개골을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으면서였다. 이 과정은 최근 미국에서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 방영되기도 했는데,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두개골의 DNA분석 결과, 20~40세 여성으로 밝혀진 것. 그 두개골은 DNA 뿐만 아니라 두께 등에 있어서 육안상으로도 확연히 여성의 특징을 보였다고 연구진은 덧붙였다.

그러자 일각에서는 이 두개골이 히틀러가 아니라 아내였던 에바 브라운의 것이라는 추정을 내놓았다. 그렇지만 에바는 여전히 권총 자살이 아닌 음독자살했다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온갖 음모론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 하나는 다소 당혹스럽지만 히틀러가 사실 여자였다는 것이다. 여성임을 숨기기 위해 남장을 하며 살아왔다는 것. 생전에 히틀러는 키가 165㎝로 비교적 작은 편이었으며, 좁은 어깨에 엉덩이가 크고, 걸음걸이가 여성스러웠다는 점 등이 그 증거로 제시됐다. 히틀러의 남장여자 설에 무게를 더한 것은 측근의 기록이다. 한 측근이 쓴 일기에 히틀러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부터 남자아이처럼 자라왔으며, 콧수염 역시 남자로 위장하기 위한 장치였다는 문구가 있다고 한다.

덧붙여 히틀러의 주치의가 히틀러에게 남성호르몬을 주사해왔다는 기록을 남겼다는 사실이 전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학자들은 히틀러의 비서의 말을 인용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남성호르몬 주사는 히틀러가 자신의 남성성을 한층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73세까지 아르헨티나에서 살았다?!

히틀러의 죽음을 명확히 입증할 법의학적 근거는 현재로선 없다. 죽음에 대한 의문을 파헤칠수록 오히려 미궁이 더 깊어지는 이유다. 히틀러의 죽음을 증명하는 거의 유일한 증거품인 해골이 가짜라면 시작점부터 되짚어야 할 필요가 있다. 혹시 히틀러는 1945년 4월 30일에 죽지 않았던 건 아닐까?

다수의 음모론자들은 권총자살의 형태로 숨진 이는 히틀러와 닮은 대역이었고, 진짜 히틀러는 다른 나라, 구체적으로 아르헨티나로 탈출했다고 믿는다. 패망에 대비해 일찍이 자신과 닮은 사람을 뽑아 대역을 맡겼고, 자신은 에바와 함께 특별한 루트를 이용해 해외 도피에 성공했다는 시나리오다.



웹진 ‘괴물딴지’의 운영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유상현 씨는 저서 ‘괴물딴지 미스터리 사전’에서 패망 직전 히틀러가 이미 독일에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히틀러의 죽음에 관해 연구하는 사람들 중 몇몇은 1945년 나치 패망 전, 베를린이 아닌 뉘른베르크에서 히틀러가 친위대의 배웅을 받으며 항공기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찍은 영사필름을 발견했다. 이 필름은 당시 히틀러가 베를린에 없었으며, 아르헨티나로 떠난 증거가 된다.”

이것이 사실이라고 가정해보자. 하지만 어떻게 아르헨티나로 갈 수 있었을까. 아르헨티나 도피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1945년 소련군에게 생포된 히틀러가 스탈린과 모종의 비밀협정을 맺고 잠수함을 이용해 라틴아메리카로 탈출했다고 설명한다. 아르헨티나 외곽의 한 독일인 소유 호텔에서 히틀러를 목격했다는 증언도 있어 우리의 귀를 솔깃하게 만든다.

2차 세계대전에 관해 광범위한 저작을 남긴 영국의 역사학자 겸 저널리스트 제라드 윌리엄스와 사이먼 던스틴도 2011년 저서 ‘회색 늑대: 아돌프 히틀러의 탈출’을 통해 앞선 주장을 되풀이했다. 두 사람은 이 책에서 히틀러와 에바가 2차 대전 막바지에 독일을 탈출해 아르헨티나로 망명을 떠났고, 슬하에 두 딸을 두고 1962년까지 살다가 73세를 일기로 숨졌다고 적시했다. 아르헨티나에서 히틀러 부부를 봤다는 수많은 목격자들의 이야기도 있다고 밝혔다.

특히 두 저자는 미국 정보당국이 나치가 개발한 전쟁기술을 넘겨받는 대가로 히틀러의 망명을 도왔다고도 밝혔다. 또 자신들에게 도움을 준 2명의 증인이 알 수 없는 사람들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달로 떠난 히틀러

이처럼 논란이 끊이지 않다보니 2012년 FSB는 다시금 히틀러가 1945년 사망했으며, 그가 아르헨티나로 도주했다는 설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바실리 크리스토포로프 소장도 한 인터뷰에서 “‘회색 늑대: 아돌프 히틀러의 탈출’은 또 하나의 값싼 선정주의적 시도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또 “1954년부터 지금까지 히틀러 사망 관련 문서와 증거들이 FSB 중앙고문서보관소에서 특별 관리되고 있다”며 “이중에는 히틀러의 측근들을 상대로 한 심문 결과보고서와 히틀러 시신 발견 장소 사진, 법의학 감정서, 히틀러의 턱뼈 조각, 그의 개인 소지품 등이 포함돼 있다”고 소개했다.

한마디로 히틀러가 1945년 사망했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진실이라는 얘기였다. 이와 관련 사망 직전 히틀러의 벙커 생활에 대한 증언이 전해진다. 2007년 히틀러의 경호원이자 전화 교환수였던 로쿠스 미슈는 2007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벙커 생활은 상당히 평온했고, 히틀러도 침착했다. 역사가나 영화감독, 기자가 묘사하는 것처럼 그렇게 극적이지 않았다.”

1937년 20세의 나이로 독일 나치 친위대에 들어간 미슈는 1945년 소련군이 접근해 올 당시 베를린의 지하벙커에서 히틀러, 에바 브라운과 함께 지내다가 전쟁이 끝나고 체포돼 구소련 수용소에서 9년을 복역했다.

미슈는 “(사망 직후) 문이 열렸을 때 에바는 무릎이 거의 턱에 닿을 정도로 다리를 구부린 채 누워있었다”며 “히틀러의 시신은 신발만 밖으로 튀어나온 채 담요로 덮여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침묵만이 흘렀다”면서 “내가 사령관에게 가서 ‘영도자가 죽었습니다’라고 전했다”고 회상했다.

이 같은 증언에도 불구하고 음모론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있다. 히틀러에 대한 많은 부분이 아직 베일에 싸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혹자는 히틀러가 아르헨티나가 아닌 남극으로 도주했다고 주장한다. 1950년대에 미국과 영국의 특수부대가 비밀리에 수차례나 남극에 맹공을 퍼부은 것을 그 근거로 내세운다. 남장여자 만큼 황망한 설도 있다. 히틀러가 아예 지구를 떠나 달로 도주했다는 것이다.

영국의 칼럼니스트 제이미 킹의 저서 ‘세기의 음모론’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독일군은 전쟁이 끝나기 전 수년간 로켓을 포함한 복잡하고 정교한 무기를 개발했다. 히틀러가 이 로켓 가운데 1대에 타고 달에 있는 비밀 식민지에 도착해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이론에 따르면 달의 대기는 인간이 호흡하기에 적합하며, 히틀러는 별탈 없이 안락하고 안전하게 살았다고 한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제이미 킹은 이렇게 덧붙였다.
“1945년 히틀러에게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 났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히틀러는 전쟁에서 살아남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확실하다. 지금은 사망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만의 하나라도 그가 아직 살아 있다면? 지난 4월 20일로 125번째 생일잔치를 치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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