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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미국과 일본의 영화가 8월말과 9월초 잇따라 우리나라를 찾는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1955~2011)를 영화화한 '잡스'(감독 조슈아 마이클 스턴)와 일본 제로센 전투기의 설계자 호리코시 지로(1903~1982)를 주인공으로 한 '바람이 분다'(감독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것.
최근 몇 년간 애플이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삼성 등 국내 기업과 사활을 건 경쟁을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 '잡스'는 비상한 관심을 불러 일으킨다. '바람이 분다'는 '전범'일 수도 있는 인물을 미화했다는 점에서 국내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영화 '잡스'는 맥과 아이폰을 만든 혁신가 스티브 잡스의 일생을 다룬다. 애플을 설립해 세계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를 개발하는 등 혁신적 제품을 쏟아내지만 지나친 완벽주의자로, 시대와 불화했던 면모를 다각도로 조명한다. 지난 5일 공개된 예고편에서는 맨발로 교정을 걷고 의견이 다른 직원을 단칼에 해고하는 등 완벽주의자와 괴짜 성향을 가진 잡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잡스'는 월터 아이작슨이 2011년 쓴 같은 이름의 전기 '스티브 잡스'를 토대로 했다. 책은 이미 국내에서도 번역 출판돼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다만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다소 수정이 불가피했던 것 같다. 애플의 공동창업자이자 스티브 잡스의 친구였던 스티브 워즈니악은 지난 1월 선공개된 '잡스'를 관람한 후 "일부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평한 바 있다. 이번 영화에서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잡스 역을 맡은 애쉬튼 커쳐다. 커쳐는 잡스와 닮은꼴일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IT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어 애플 주식을 10년 동안 보유하고 있는 애플 마니아로도 알려져 있다. 영화 '잡스'는 오는 29일 국내 개봉하며, 미국에서는 이에 앞서 16일에 개봉한다.
일본 만화영화 '바람이 분다'의 호리코시 지로는 국내 관객에게는 낯선 이름이다.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생애 처음으로 실존인물을 영화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작품으로도 주목을 받았는데 하필 대상이 '전범'이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일고 있다. 호리코시는 일본의 유명한 비행기 설계자로 1930년대 당시로서는 최첨단인 제로센을 개발한 인물이다. 이 제로센이 미국 진주만 공습 등 제2차 대전에서 침략전쟁에 동원됐다는 점에서 지난달 20일 개봉 후 일본 내에서도 '전범' 미화 논란에 휩싸였었다. 영화에서는 비행기 개발에 몰두하는 호리코시의 젊은 날에 집중할 뿐 전쟁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제국주의의 직접적인 피해자였던 한국인으로서는 불편한 영화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국내 이런 시각을 의식한 듯 일본 제작사는 지난달 26일 60여명의 국내 기자를 초청, 시사회와 미야자키 감독의 기자 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그는 "호리코시 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같은 세대의 삶을 녹였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미야자키 감독이 '벼랑위의 포뇨' 이후 5년 만에 내놓은 신작으로 특유의 터치와 감성이 돋보이고 있어 영화 자체의 작품성은 뛰어나다는 평이다. 호리코시의 목소리 연기를 '에반게리온' 시리즈의 안노 히데아키 감독이 맡았다는 것도 흥미롭다. 안노 감독은 미야자키 감독의 오랜 지인으로 호리코시의 감정을 충실히 전달했다. '바람이 분다'는 9월 5일 국내에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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