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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전관예우와 사법의 질

정인진 법무법인 바른 대표변호사

전관예우는 이제 공직자가 사회에 끼치는 패악의 대명사쯤 됐다. 어느 학회의 세미나에서 전관예우를 토론 주제로 내세운 일이 있었다. 법원이나 검찰에서 나온 발표자들은 애써 그런 관행의 존재 자체를 부인했지만 학자들은 전관예우가 실재하는 게 아니냐며 격하게 비난했다.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농담으로 "전관예우는 법원이나 검찰이 해주는 게 아니라 의뢰인들이 해주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믿거나 말거나, 현실은 그렇다. 어떤 변호사는 전관에 대한 예우는커녕 전관 '학대'가 만연하다고 푸념 아닌 푸념을 한다. 더욱이 연전에 변호사법이 개정돼 개업 1년 전까지 기간 중 재직하던 법원이나 검찰청의 사건을 수임하는 것이 금지되면서 이른바 '따끈따끈한'전관의 개념은 없어졌다고 할 수 있다. 법무법인 대표로서 그간 지켜본 바로는 이 조치가 '의뢰인이 해주는 전관예우'를 막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 분명하다.

조계의 전관예우라는 것이 일반에서 생각하는 편파적 재판이나 처분을 해주는 것이 아님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전관이 사건 수임에서 다른 변호사에 앞서는 것은 웬일인가라고 할지 모르겠다. 이런 설명도 있다. 설렁탕 한 그릇을 먹어도 원조집이 어디냐고 따지는 것이 우리 사회의 의식이다. 하물며 기업의 존립이 걸리고 사람의 신분과 명예가 걸리고 교도소에 가느냐 마느냐가 걸려 있는데 어찌 실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가리지 않고 변호사를 선임하겠는가. 이는 말하자면 종합병원에서 갓 퇴직한 개업의에게 환자가 몰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또 하나 걱정스러운 것은 걸핏하면 튀어나오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귀다. 이것이 전관예우 문제와 결합하면 돈이 있어 전관 변호사를 선임하면 무죄가 되고 돈이 없어 전관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하면 유죄가 된다는 것쯤으로 비약한다. 앞서 세미나에서 필자가 했던 반박은 이랬다. 의사가 암 환자를 수술할 때 치료비를 받지 않은 환자의 암 덩어리는 반만 잘라내고 치료비를 다 받은 경우에는 전부 잘라내겠는가. 그런 식으로 판결하는 판사는 없다. 파렴치범 수형자가 교도소를 탈출해 무고한 시민을 인질로 잡은 채 턱도 없이 내뱉은 막말이 언제부터인지 무책임하게 인용되는 행태를 보면 딱하다.

한 번은 사석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전관이 있는데 예우를 하지 않을 수는 없을 테고 아예 전관을 없애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반쯤 농담으로 듣고 모두들 웃었는데 일전에 대법원장이 전관예우의 근본적 해결책은 전관이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고 보도됐다. 법원의 전관예우가 그리도 걱정된다면 경력 있는 법관이 변호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경력 있는 변호사가 법관이 되는 것으로 인적 구성방식을 바꾸는 것이 가장 확실한 대책일 것이다. 실은 그 경우 사법의 질이 어떠할지를 따져보는 것이야말로 책임 있는 이들이 진정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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