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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제 책임입니다"


대학시절 프랑스를 처음 방문했을 때 가장 눈길을 사로잡은 점은 차도에서 신호를 지키는 사람들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신호는 자동차만 지켰다. 사람들에게는 자유롭게 걸어다닐 권리가 있다고 자유혁명의 후예인 이들은 답했다. 독일에서 개를 키우려면 몸집에 비례한 주택면적 기준을 지켜야 한다. 이를 누가 조사·관리하는지 묻자 '이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우슈비츠' 등의 집단적 가치붕괴 경험이 올곧은 질서의식으로 이어진 듯했다. 이렇듯 한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관과 기준·문화는 그 사회가 걸어온 길을 반영한다.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한 달. 그동안 '대한민국호'는 어쩌면 출항 이후 최초로 거대한 '공백'을 경험했다. '빨리빨리'와 효율이 정답이던 우리 사회에 난생처음으로 '일시정지' 버튼이 눌러졌다. 단체모임과 여행이 실종됐고 밤거리에는 인적이 끊겼다. 사람들은 돈을 쓰지 않았고 웃지도 않았다.

일제강점기와 전쟁, 개발독재와 군부통치를 거치면서 우리는 '살아남는 것이 선'이라는 논리에 길들여져 왔다. 남들보다 먼저, 빨리 자리를 잡은 사람은 기득권을 선점할 수 있었다. 규칙과 양심을 준수하고 양보하는 행동은 때로는 만용으로 읽혀졌다. 우리는 '책임감'이라는 단어를 들먹일 때조차도 사회적 의무는 도외시한 채 가족부양을 거론할 때나 썼다.

그런데 멈춤 버튼을 누르고야 깨닫는 한 가지. 그 과정에서 우리가 잃은 것은 기실 우리가 지닌 것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지닌 자원만으로도 충분히, 넉넉히 지킬 수 있었다는 뒤늦은 통한이다.



마치 사회 곳곳에 카메라를 댄 뒤 이어붙인 것처럼 그간 낱낱이 드러난 우리의 실체는 너무 아팠다. 침몰하는 배에서 승객 구조보다는 본사와 통화에 매진한 선장, 구조부터 수습까지 우왕좌왕한 해경, 과적 화물을 실은 선사와 이를 눈감아준 감독당국, 선박 연한을 30년으로 늘려준 정부. 있을 수 없는 일들의 연결고리가 반복된 가운데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진범은 과연 누구일까.

책임감이란, 리더십이란 늘 '무한책임'으로 귀결된다. 그렇기 때문에 책임을 외면하는 사회에서는 책임자를 찾으려 해도 잘 찾아지지 않는다. 그러나 책임을 준수할 때 따라오는 것은 의무만이 아니다. 책임이 부여될 때 비로소 권한이 살아난다. 그리고 사회는 각 구성원에게 역할과 권한을 위임할 때 비로소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책임이 없는 곳에는 권한도 없고 책임과 권한의 부재는 결국 혼돈과 침몰 위기로 이어진다.

많은 이들이 이번 사고를 잊지 말자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추모공원을 만들고 기념탑을 세운다고 이뤄지지 않는다. 진정 이대로는 안 된다고 느낀다면, 그렇게 민주주의를 뿌리내렸다면, 이제 스스로 초래한 국난 앞에서 다시 한번 답해야 한다. 미안하다 하지 말고 책임지겠다고 말해야 한다.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생명들이 뿌려진 짙은 바다 앞에서 마치 그들이 되묻는 것 같다. '제 책임입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김희원 사회부 차장 heew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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