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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ㆍ달러 환율이 큰 폭 하락해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판매가격을 올려야 하지만 엔저를 틈탄 일본 메이커들의 공세 때문에 적정가격을 유지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의 한 고위관계자) 원ㆍ엔 환율이 700원대로 떨어지면서 국내 수출 대기업에 초비상이 걸렸다. 특히 해외에서 일본 업체들과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자동차와 전자ㆍ철강업체 등은 엔화가치의 급격한 하락으로 수출에 큰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보고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미 주력 수출품목들은 미국 등 선진국 시장에서 일본의 치열한 가격인하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며 “가파른 엔화 약세는 우리 상품의 대일수출 감소는 물론 제3국 시장에서도 일본에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일본의 도요타는 올 하반기 미국에서 소형차 야리스 가격을 현대 베르나보다 875달러나 싸게 내놓았고 인도에서는 대당 600만원가량의 최저가 차량 판매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때 일본 자동차들이 국산차보다 가격이 높았지만 엔화 약세의 여파로 가격이 역전된 것이다. 실제로 올 들어 지난 8월까지 미국 시장에서 베르나의 판매실적은 총 2만6,181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2% 감소했다. 최재국 현대차 사장은 최근 “엔저 등에 따른 경쟁국의 가격을 고려해야 하는 문제 때문에 올해 말 미국 시장에 출시할 베라크루즈의 가격을 결정하는 데 애로를 겪고 있다”고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은 전자업계도 마찬가지다. 일본 샤프전자는 삼성ㆍLG전자 제품보다 가격이 30%나 싼 LCD TV를 미국에서 출시했다. 샤프와 소니 등 일본 메이커들은 엔저 현상을 적극 활용해 북미 등 세계 주요 시장에서 한국 업체를 따돌리기 위한 공격적 마케팅에 혈안이 돼 있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디지털 TV 등이 아직까지는 세계 주요 시장에서 일본을 누르고 있지만 엔저 가속화를 등에 업은 일본 업체들의 가격인하 공세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철강업계의 경우도 일본 업체들이 엔저를 틈탄 저가공세를 벌이면서 동남아 시장 등에서 포스코를 괴롭히고 있고, 조선업계에서는 엔화 약세로 인한 수주물량 감소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국내 대기업들이 고부가가치 제품의 개발 및 품질 향상, 적극적인 마케팅 등으로 맞서고 있지만 원ㆍ엔 환율이 이처럼 가파르게 하락할 경우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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