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꼭 잠겨 있던 달러 물량이 마침내 풀리기 시작했다. 강도 높은 당국의 총력전과 ‘9월 위기설’에 대한 불안감 진정, 단기급등에 따른 차익실현 분위기 등이 어우러지며 역외세력과 수출업체들이 꽉 움켜쥐고 있던 달러 매물이 대거 쏟아졌다. ‘가뭄의 단비’가 뿌려진데다 패닉상황이 진정되면서 외국인 채권만기 상환시점인 다음주 초를 발판 삼아 환율 안정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4일 원ㆍ달러 환율은 장 개시 전부터 하락세가 점쳐졌다. 전일 역외선물환(NDF)시장에서 역외투자자들의 차익실현 매물로 환율이 1,140원대로 하락, 마감했기 때문이다. 이날 환율이 급락한 결정적 배경은 당연한 얘기지만 달러 매물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사실 최근 4일간 환율이 폭등했던 것은 매도공백 속에서 ‘묻지 마 매수’에 의해 소액 주문으로도 변동성이 커진 탓이 크다. 수입업체에서 은행권에 달러를 사달라고 주문하면 은행은 앞뒤 재지 않고 주문을 냈고 이는 거래 없이 호가만 키우며 환율을 급하게 끌어올렸다.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지난 3일 오전에는 1,000만달러 매수로 5원가량 급등했다”며 “평상시와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달러 구하기가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전날 밤 역외시장에서 이익실현 매물이 나온데다 전일 1,159원에서 고점을 찍고 방향을 틀었다는 시각이 확산되면서 역외세력은 물론 수출업체의 달러 물량이 방출되기 시작했다. 김두현 외환은행 외환운용팀장은 “지난 4일 동안 매물이 없어 달러 주문을 내도 잡히지 않았으나 이날은 매물이 넘쳐나면서 환율이 하락했다”고 말했다. 최근처럼 다급한 심리에 주문을 내지 않은데다 매물이 쌓이면서 환율이 떨어졌다는 설명이다. 시장 관계자들은 시장안정을 위한 당국의 총력 방어와 9월 위기설에 대한 불안심리 진정, 차익실현 분위기 등이 매물 출회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정미영 삼성선물 리서치 팀장은 “개장 초 시장에 외화유동성 공급이 충분하다는 당국의 분석과 공기업 등이 2개월간 100억달러 규모의 해외차입을 추진한다는 기획재정부의 발언 등이 시장의 불안감을 어느 정도 진정시켰다”고 말했다. 특히 금융감독원이 투기매매로 시장을 교란시킨 외환딜러에 대해 조사를 벌이겠다는 방침이 전해지자 시장심리는 더욱 위축됐다고 정 팀장은 전했다. 이와 함께 단기간 환율이 과도하게 올랐다는 인식과 9월 위기설의 진앙지인 스와프시장이 달러 수급 사정 호전으로 위기설이 과장됐다는 분석이 힘을 얻은 점도 달러 물량 방출을 자극한 것으로 풀이된다. 홍승모 신한은행 차장은 “단기간 오버슈팅한 시장이 정상화로 돌아오는 과정으로 판단된다”며 “과열된 만큼 하락속도가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패닉상태가 진정된데다 다음주 초 꼬였던 상황이 풀릴 가능성도 높아 환율이 당분간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김 팀장은 “급등세가 한풀 꺾여 환율이 아래쪽으로 방향을 틀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하지만 다시 1,100원 밑으로 갑자기 내려가기는 힘들 것 같다”고 내다봤다. 정 팀장은 “3일을 고비로 불안심리가 상당 부분 수그러들었다”며 “당국의 전망대로 다음주 초 별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안정흐름이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