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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乙입장서 뒷바라지 해봤다면
입력2011-07-25 16:56:23
수정
2011.07.25 16:56:23
비리와 부정은 힘 있고 돈 있는 곳에서 생긴다. 공직 인사권을 좌지우지하고 정부 예산을 마음대로 주무르며 거미줄 규제 망(網)을 거침 없이 칠 수 있는 사람과 기관의 비리 감염지수는 높다. 국토해양부가 요즘 온갖 비리의 '온상'으로 꼽혀 체면이 말이 아니다. 연찬회 향응, 전별금∙뇌물 등을 받은 국토부 직원들의 부정∙비리가 줄줄이 터져 나왔다. 정치인 몫의 건설업자 출신 오장섭 건설교통부(국토부의 전신) 장관 시절에도 없었던 일이다.
국토부에 신세 많이 진 MB
국토부는 언뜻 보면 시쳇말로 끗발 없는 부처다. 국토부 장관이 국무위원 의전서열에서 15개 정부부처 장관 가운데 꼴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실체를 모르는 단견이다. 국토부는 산하 공기업만 31개를 문어발식으로 거느리며 전체 정부규제의 22%를 틀어쥔 막강 부처이다. 1,600여개의 인허가권을 가지고 주거∙건축∙개발∙교통∙해양분야 등 국민생활 현장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다. 또 올해 전체 정부예산의 11%인 23조5,000억원을 집행, 정부부처별 예산규모 상위 랭킹에서 네 번째다.
국토부는 폼 잡고 생색 낼 수 있는 부처로 인식돼 있다. 역대 정권들이 민심을 얻기 위해 앞다퉈 국토부의 개발정책을 동원한 것에서 비롯됐다. 지역 민원해결의 핵심수단인 인허가권과 예산이 많다 보니 정치인들도 개각 때마다 국토부 장관 자리에 군침을 흘린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은 국토부에 신세를 너무 많이 졌다. 반대가 많았던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이고 공약사항이었던 세종시∙동남권신공항 건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이전 등 국책사업 계획을 수정∙추진하거나 백지화하는 과정에서 국토부에 큰 짐을 안겼다.
그게 화근이었다. 국토부에 힘이 실리면서 국토부 직원들의 목이 뻣뻣해졌다. 자고 나면 터져 나오는 국토부 비리 시리즈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 대통령은 서민 민생현장 등을 방문할 때 '을(乙)의 추억'을 자주 떠올린다. 저축은행 비리와 관련해서는 금융 당국에 "분노한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갑을(甲乙)의 처지를 모두 겪을 수 있는 건설현장의 애로는 언급하지 않는다. 애써 외면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국토부 연찬회 파문이 인 뒤 열린 장차관 국정토론회에 참석, "을의 입장에서 뒷바라지해준 일이 있다"며 자신의 과거 경험을 얘기했다. 그러면서 "연찬회 뒷바라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토부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데가 그랬다"고 말했다.
이런 언급의 취지가 잘못된 관행의 고리를 끊어달라고 주문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민간업체의 정부부처 연찬회 후원이 관행인데 일부 비판적 시각이 있으니 마지못해 문제 삼는 듯한 말투로 들린다.
이 대통령은 국토부 문제에 대해 왜 그리 너그러운가. 갑과 을 처지를 모두 겪은 대형 건설업체 경영자 출신이라서 을의 뒷바라지는 있을 수 있다는 논리에 익숙해서인가. 아니면 4대강 사업 등 국토부에 신세 진 것에 대한 보은인가.
권력서 봉사기관으로 거듭나길
정부부처의 기강을 바로 잡는 일은 해당 부처 장관의 책임이다. 그러나 권력기관 국토부의 변화와 개혁은 장관의 엄포로만 이뤄질 수 없다는 판단이다. 결국 국토부에 대해서만큼은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토부 직원들의 어깨에서 힘을 뺄 필요가 있다.
그 첫 걸음은 내년 총선∙대선 등 양대 선거를 앞두고 선심성 개발공약과 결별을 선언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국토부에 더 이상 신세를 지지 않는다면 국토부 직원들의 오만한 인식과 태도에서 비롯된 비리∙부정은 막을 수 있다. 더 나아가 국토부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을 서둘러 권력 기관 국토부가 봉사 기관 국토부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이 대통령은 임기 1년 반 정도를 남겨둔 현 정권의 도덕성이 국토부에서부터 흔들릴 수 있다는 시중의 지적에 귀 기울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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