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10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가격이 들썩거렸다. 재건축사업의 걸음마 단계인 '안전진단'을 실시하겠다는 계획만으로 시장이 술렁거렸다. 앞으로 주택시장을 선도하는 바로미터라는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이 아파트는 이미 수년 전 한 대형업체를 시공사로 선정했었지만 여전히 다른 경쟁사들이 "수익이 나지 않아도 잡을 수만 있다면 무조건 잡겠다"며 기회를 노리고 있을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2. 부산 북구의 한 재건축 단지. 대지면적 1만5,800㎡에 총 380가구 규모인 이 단지는 2006년 12월 조합설립추진위가 설립됐지만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사업이 한걸음도 더 나가지 못하고 있다. 어떤 건설사도 이 단지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 북구청의 한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가 좋았던 2006년 하반기에 재건축ㆍ재개발 추진위 설립이 잇따랐지만 지금은 대부분이 지지부진한 상태"라며 "추진위란 이름조차 유명무실하다"고 말했다. ◇아무도 관심 없는 지방 재개발ㆍ재건축=재건축은 정부가 집값 상승의 진원지로 꼽는 곳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서울과 수도권 요지에 해당되는 얘기다. 재건축 사업에 대한 서울과 지방의 현실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개발ㆍ재건축에 관한 규제는 강남과 강북, 서울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일률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1%(강남권)를 잡기 위한 무차별적 규제 때문에 99%(비강남권)의 재생사업이 발목 잡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비기반시설이 열악한 지역의 노후 주택을 아파트 등으로 짓는 재개발 사업의 진행 여부는 주변 주택거래시장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지방에서는 워낙 기존 주택가격이 낮다 보니 일반분양 자체가 쉽지 않은데다 조합원들조차 아파트를 포기하고 현금청산을 요구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건설사들도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해 참여를 꺼린다. 낡은 집을 허물고 새 집을 짓고 싶어도 지어줄 건설사가 없는 실정이다. 부산 사상구에 위치한 2,036가구 규모의 한 재개발구역은 3차례나 시공사 선정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1,581가구 규모의 대전 대화동의 한 재개발구역 역시 건설사들의 무관심으로 시공사 선정에 애를 먹고 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서울의 경우 전체 재개발구역 2,017만㎡(2007년 기준) 중 사업시행인가 이전 단계 구역은 238만㎡로 11.6%에 불과하지만 부산은 829만㎡ 중 절반 가까운 387만㎡가 사업 초기단계에 머물고 있다. 수도권에서도 경기도의 미시행률이 52.6%에 달하고 충남(72.5%)이나 광주(94.5%) 등 나머지 지방 대도시는 사실상 구역 대부분의 사업이 겉돌고 있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 소장은 "장기간 방치되는 사업장의 경우 각 시에서 일부 자금을 출자해 별도의 도심재생 전문기관을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수도권 재건축 이익 환수하면 오히려 손해=재개발에 비해 재건축은 규제의 정도가 더 심한 편이다. 재건축의 대표적인 규제는 소형평형 의무비율과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 소형평형 의무비율이란 재건축을 할 때 전체의 60% 이하를 전용 85㎡ 이하 중소형으로 짓도록 한 규정이다. 지방의 경우 중대형보다 중소형에 대한 선호도가 높기 때문에 이 규정 자체는 사업 추진에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재건축을 통해 발생한 이익을 최고 50%까지 정부가 환수하는 '초과이익환수제'는 얘기가 달라진다. 서울 강남권은 주변 집값이 워낙 높고 재건축에 따른 자산가치 상승이 크다 보니 노후 단지들은 이 같은 규정에도 불구하고 사업 추진에 큰 어려움이 없다. 반면 이 규정은 서울만 벗어나면 각 단지에 엄청난 굴레가 된다. 국토해양부가 2006년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시행을 앞두고 만든 보고서에 따르면 강남 E아파트의 경우 세대당 초과이익이 4억4,500만원, 잠실 J단지는 초과이익 5억7,9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반면 군포ㆍ안양의 경우 초과이익이 3,000만원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고 대전ㆍ대구 등 지방은 개발비용 등을 감안할 때 오히려 최대 7,800만원의 손해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실제로 광명 등 수도권 일대 상당수 저층 단지는 상대적으로 재건축 추진 일정이 늦어 이익환수제를 적용 받게 되면서 수익성 문제로 사업이 진척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지방은 재건축초과이익은 고사하고 대도시조차 주변 집값이 건축비 수준에도 못 미치는 등 사실상 수익성이 거의 없어 아예 재건축 자체를 포기한 곳들이 부지기수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지역적 특성을 감안해 초과이익 환수제 등을 차등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조주현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강남 등) 특정 지역의 집값을 막기 위해 제도를 존속시키는 게 불가피하더라도 가격 불안 우려가 없는 지방 등에 대해서는 재개발ㆍ재건축 규제를 융통성 있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자산관리업체 리얼티허브의 최황수 대표도 "지방 도심은 서울이나 수도권에 비해 노후 주택 방치에 따른 공동화ㆍ슬럼화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며 "재개발ㆍ재건축의 본래 의미가 노후 도심 주거환경 개선인 만큼 이를 활성화기 위한 정책적 대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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