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조원이 길고 깊은 겨울잠에 빠졌다. 국가 장기전원개발계획에 따라 수립된 신규 원자력발전소(원전) 건설이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업에 따라 1년 6개월이 늦춰진 곳부터 아예 밑그림 조차 그리지 못하는 곳까지 있다. 전력의 장기수급에 지장이 빚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뉴딜정책’을 추진하며 한푼의 투자라도 더 끌어들이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는 처지라 잠자고 있는 20조원이 더욱 아깝다. 정부의 직접적 투자 부담도 없고 이미 공사계약까지 마친 원전건설이 미뤄지고 있는 것은 환경단체의 반발 탓이다. 정부로서도 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 건설을 강력 반대하는 환경단체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원전 건설을 강행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그러나 전세계가 에너지전쟁에 돌입한 마당에 ‘눈치보기식’ 행정으로 국가중요사업이 연기된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원전이 들어설 지역 및 지방자치단체에서 조차 별다른 반대가 없는 상황에서 일부 환경단체가 마땅한 대안 없이 원전 건설을 중단하도록 요구하는 것도 무리라는 지적이다. ◇잠자는 투자비 20조원=우리나라는 현재 고리 원전 4기를 비롯, 영광 6기, 월성 4기, 울진 5기 등 총 19기의 원전을 가동하고 있다. 울진 6호기는 건설중이다. 이들 원전에서 생산되는 전력은 가장 저렴해 우리나라 전력공급 시 최우선적으로 거래되며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 전력공급량의 40.2%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발전 등으로 전력수요가 2015년까지 연간 3.5%씩 늘 것으로 예상돼 산업자원부는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위해 지난 2000년과 2001년 신고리1ㆍ2호기, 신월성 1ㆍ2호기, 신고리 3ㆍ4호기 등의 원전건설 기본계획을 확정했다. 사실상 지역 및 건설계획이 준비된 2기의 원전건설도 대기중이다. 지난해 6월 주설비공사 계약까지 체결된 신고리 1ㆍ2호기의 투자비만 4조9,000억원. 원전 건설 및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에 따르면, 원전 1기당 건설에 평균 6년이 걸리고 2.5조원이 투자됨을 고려할 때 총 20조원, 매년 2조원 이상의 투자가 금고에서 대기중이다. 투자비는 전액 원전 가동으로 매년 6,000억~7,000억원의 순익을 내고 있는 한수원이 부담한다. ◇답답한 지자체와 건설업체=투자 지연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는 곳은 먼저 건설업체. 계약체결까지 마친 신고리 1ㆍ2호기, 신월성1ㆍ2호기 건설에는 현대건설, 대림산업, SK건설, 대우건설, 삼성물산 건설부문, LG건설 등이 참여하고 있다. 주요 원전설비 공급은 두산중공업이 맞는다. 고리3ㆍ4호기와 계획중인 2기까지 포함하면 국내 주요 건설업체 거의 전부가 건설경기 침체 상황에서 원전 건설 착공일 만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이미 90% 가량 토지보상 작업이 끝난 고리 인근의 지역주민 및 자치단체도 애가 타기는 마찬가지다. 강재연 한수원 홍보실장은 “신고리 1ㆍ2호기 건설이 추진되면 일일 8,000명의 고용창출이 가능하고, 완료 후에는 500명 이상의 신규채용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부산시 기장군과 울산시 울주군은 취득세 및 등록세로 350억원 이상, 지방세 및 공과금으로 매년 100억원 이상의 수입을 얻게 된다. 기장군의 한 관계자는 “이미 원전운영을 통해 안정성에 대한 신뢰가 있어 지역주민 대부분은 우려보다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눈치 보는 정부, 대안 없는 환경단체=신고리1ㆍ2호기 건설은 정부의 사업승인만 기다리며 1년 6개월의 시간을 보냈다. 방폐장 건설이 시급한 상황에서 여론과 정책운용의 묘를 고려한 신중함이라고 정부는 항변하지만 2015년까지 장기전력수급계획을 세워놓고 원전건설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당하지 못한 처신이란 비판은 피할 수 없다. 계획 차질은 곧 전력수급 불안으로 이어진다. 전략적으로 원전건설 중단을 최종 목표로 하고 있는 환경단체 역시 원전 대안은 자기 일이 아니라며 모른 채 하고 있다. 대안은 정부가 찾으라는 얘기다. 이중재 한수원 사장은 “석유, 석탄, 가스를 쓰는 발전소보다 원전이 훨씬 환경에 이롭다”면서 “위험은 어디에나 있으나 100% 관리되고 있어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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