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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창업과 종교

창업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필자는 가끔씩 색깔이 뚜렷하고 개성이 넘치는 손님들을 만나게 된다. “원장님 저는 종교가 기독교거든요. 그래서 술은 절대로 팔면 안 돼요. 술을 팔지 않고도 돈을 잘 벌 수 있는 그런 업종을 추천해주세요.” 상당히 까다로운 주문이다. 알다시피 음식점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려면 점심에 10만원을 벌었다면 저녁에는 최하 3배인 30만원을 벌어야 한다. 저녁에는 술이 포함돼야 돈 벌기가 쉽고 메뉴에 다양한 안주를 넣는 게 효율적인 매장 운영의 비결 중 하나다. 이런 상황을 수도 없이 겪은 터에 술을 안 팔고 돈을 잘 버는 메뉴를 찾아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4년 전 목동 6단지 상가에서 창업을 했던 어떤 분의 경우가 그랬다. 제조업을 하던 남편 사업이 IMF 때 부도가 나 살던 아파트마저 날리고 무일푼이 된 채 시누이 집에 사는 상황이었다. 친척들이 어렵사리 마련해준 창업자금 5,000만원 정도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업종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사실 5,000만원은 큰돈이지만 그 돈에 맞는 업종을 찾아 창업하기란 쉽지가 않다. 당시 한창 생맥주 전문점이 인기였는데 매장형 30평 규모의 평균 창업비가 3억원 정도라 가지고 있는 자금으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여러 정황을 고려해 거꾸로 생맥주와 안주를 각 가정으로 배달해주는 방식을 택해 비용을 절감하기로 했다. 우선 배달 위주의 창업은 매장 인테리어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또 배달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장소 선정시 권리금을 줘야 하는 좋은 자리보다는 배달 오토바이를 대기 쉬운, 다시 말해 순발력 있게 배달할 수 있는 그런 장소를 골라 창업 비용을 대폭 줄였다. 문제는 점주를 설득하는 것이었다. 창업을 하면 목사님도 오시고 신도들도 찾아올 텐데 술을 파는 것은 좀 그렇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종교였던 점주는 여러 날을 고민해 혹시나 매장을 방문한 교회 신도들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는 데 공감, 점심에는 항아리수제비를 주 메뉴로 하는 생맥주 안주 배달 전문점으로 업종을 결정했다. 가끔씩 매장을 방문해보면 정말 열심히 했고 수입도 생각보다 괜찮다고 했다. 세월이 흘러 창업한 지 3년이 넘은 시점에 전화를 받았다. 그동안 번 돈을 모아 아파트는 아니지만 목동 2단지쪽에 빌라를 사 이사하게 됐으니 축하해달라는 것이다. 얼마나 반갑던지 이런 말을 들으면 내 일처럼 힘이 나고 보람도 느낀다. 종교가 불교인 상담자 한 분은 음식점을 해도 살생을 하면서 해야 하는 업종은 피하고 싶다고 한다. 우선 사찰음식에서 약간 변형한 퓨전사찰음식을 주 메뉴로 결정했다. 특히 뉴욕 맨해튼에서도 ‘한가위’라는 사찰음식 전문점이 웰빙 콘셉트에 맞는 유명 음식점으로 꼽혀 인기가 급상승 중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던 터라 우리나라에서도 소비자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물 본연의 맛을 내기 위해 오신채 양념을 쓰지 않고 요즘 사람들의 심리까지 고려해 건강ㆍ웰빙에 초점을 맞춰 메뉴를 구성한다면 그야말로 불교가 종교인 예비점주의 마음에 쏙 드는 창업 아이템이 될 것이다. 먼저 음식 재료를 꾸준히 공급받을 수 있는 거래처를 확보한 후 맛 연구에 주력하고 매장 내에서 부가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건나물을 포장판매하고 시골에서 직접 담근 된장ㆍ간장도 주문판매할 수 있도록 기획하고 있다. 창업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창업자 본인의 마음이 어디에 중점이 있나를 파악한 후 창업 아이템을 선정해야 한다. 그 음식에 맞는 상권을 확보하고 점포를 계약하고 그 점포 입지에 맞는 마케팅전략까지 세워야 성공이 빨라진다. 3년 전 삼청동 미술관 2층 60평에 창업해 유명 장소가 된 산채전문점 ‘ㅅ’의 경우 이제는 예약을 해야 식사를 할 수 있을 정도다. 점주의 종교적 성향을 고려해 채식 위주의 식단을 꾸며 점주 본인의 만족은 물론 시기적으로도 건강ㆍ웰빙 추세에 맞아떨어지도록 기획한 것이 성공 매장으로의 진입을 한 발 빠르게 한 것이라 확신한다. 석가탄신일을 맞은 요즘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오색연등을 보게 된다. 젊었을 때 깊은 고민(?)이 있어 찾았던 산중의 작은 산사에서 석가탄신일에 먹었던 산채비빔밥이 지금도 기억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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