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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암, 왕인박사 '따끔한 훈계' 소리가…

문자 가르친 日후손들 '다케시마의 날' 경거망동에 <BR>1,600년전 日로 떠나던 상대포 지금은 작은 저수지로 변해<BR>어머니가 왕인박사 임신때 마신 상천약수엔 끊임없는 사람 발길<BR>내달 벚꽃 필무렵 '왕인축제' 열려

'상천약수'

'상천약수'



왕인박사는 배 뒷머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금 바라보는 고향 산천의 모습이 마지막이 될 수 있다 생각하니 병풍처럼 우뚝 솟은 월출산을 향한 그의 눈시울이 어느새 붉어진다. 하늘도 고국 땅과의 이별이 못내 서글픈 박사의 속 마음을 아는 듯 눈꽃 가루를 하나 둘씩 떨궈낸다. 눈을 질끈 감은 박사의 손에는 천자문 1권과 논어 10권이 쥐어져 있다. 일본왕의 초청을 받아 백제학자 왕인박사가 영암 상대포를 떠난 것은 1,600여년 전인 서기 397년이다. 상대포는 지금은 방조제가 들어서는 바람에 바닷길이 막힌 채 운동장 크기의 작은 저수지 모습을 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일본과 중국을 오가는 배들로 북적대는 국제항이었다. 수 십명의 장인들과 함께 일본으로 떠난 왕인박사는 한자와 경전을 일본에 처음 소개한, 말하자면 일본 첫 개화 일등공신인 인물이다. 일본은 아직 문자가 없어 구구상전(口口相傳)으로 생활하는 원시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인륜 도덕은 아직 기틀이 잡히지 않은 때였다. 왕인박사가 태어난 영암은 남도에서도 벚꽃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아직 벚꽃 철이 아닌 때인 데도 발걸음이 이곳으로 향해졌다. 월출산에서 들려올 것 같은 왕인박사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였을까. 어려서부터 영특함이 남달랐다는 왕인박사는 영암 성기동에서 태어나 스무살의 나이에 인근 구림마을 서당 문산재(文山齋) 조교 직위에 오른 뒤 백제 아신왕과 전지태자의 스승이 됐다. 박사가 일본왕의 초빙을 받아 일본으로 떠난 것은 서른 두살 늦 겨울이었다. 도자기공, 기와공, 직조기술자 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간 왕인은 일본 태자의 스승이 된 후 아스카문화를 꽃피우며 일본 학문과 인륜의 기초를 세웠다. 일본 역사서인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이름이 올라있다는 사실에서도 일본문화 발전사에서 차지하는 그의 업적을 어림 짐작할 수 있다. 구림마을에 들어서면 어린 왕인이 반벌거숭이가 되어 누비고 다녔을 고택 사이로 수백년 됨직한 노송들이 은근한 정취를 품어낸다. 마을 곳곳에 뿌리내린 대나무 사이에서는 천자문과 논어를 가르치던 왕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구림마을에서 조금 남쪽으로 내려오면 왕인박사유적지가 이어진다. 매년 벚꽃이 영암 산천을 수놓을 때면 이 곳에서는 축제가 벌어진다. 왕인박사유적지 오른쪽 기슭은 박사의 탄생지로 알려진 성기동이다. 여기서 계곡쪽으로 50m 정도 더 올라가면 성천이 있다. 왕인박사 어머니가 임신 중에 마셨던 샘물이라 알려져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왕인의 제자들이 떠나는 스승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는 왕인석상과 그가 즐겨 공부했던 문산재도 멀지않다. 개구리가 기지개를 편다는 경칩이 한참 지났는데도 한반도 남단 끝 자락의 영암은 아직 찬 기운이 남아있다. 자신이 문자를 가르친 제자들의 후손들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한다고 풍파를 일으키는 것을 지켜 본 왕인박사가 두 눈을 부릅뜨며 호령을 칠 것만 같다. 한 손에 논어와 다른 한손에 회초리를 들고 서있는 왕인박사가 생떼를 부리는 일본에게 던지는 따끔한 훈계 소리가 들린다. 영암의 명물이 된 벚꽃은 3월 말쯤에 피기 시작한다. 4월 2일부터 나흘간 열리는 왕인문화축제가 시작될 때면 영암벌판을 흐드러지게 수놓을 것이다. 남녘 봄 소식을 기대하며 한발 앞서 달려오니 코끝에는 매서운 찬바람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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