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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6일 南·北 인터넷 바둑대결

단오날인 오는 6월6일 인터넷을 통한 남북한 바둑대회가 열린다. 이를 계기로 북한바둑의 수준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북한 바둑은 남한에 비해 걸음마 단계로 평가받고 있다.자타가 공인하는 북한바둑의 일인자는 문영삼. 78년 9월 함남 함흥시에서 출생한 그는 10살 때 처음 바둑돌을 손에 쥐기 시작해 지난 93년 3월 전국바둑대회에서 우승했다. 세계무대에서는 93년 일본서 열린 NHK 세계아마추어 바둑선수권대회에서 7승1패로 3위를 차지한 게 최고의 성적이다. 평양 김형직사범대학 사범학부에 재학중인 리봉일도 문영삼과 자웅을 겨룰만한 고수. 지난 94년 북한의 유망주들이 중국에서 바둑유학을 할 때 문영삼과 두차례 격돌, 불계로 물리쳤다. 북한의 각종 바둑대회에서 7번이나 우승했다. 지난해 6월에는 일본 오이타(大分)시에서 열린 제21회 세계아마추어 바둑선수권 대회에서 6승2패로 3위에 입상했다. 여류기사로는 85년 8월 함남 함흥에서 태어난 최은아. 문영삼과 함께 「북한 바둑계를 짊어지고 나갈 인재」로 평가받아왔다. 지난 91년 바둑계에 정식 입문한 그는 92년 제4회 세계여자아마추어대회에서 7살의 어린 나이로 8위에 입상했다. 조새별도 기대주. 지난 98년 11월 세계여자아마대회에서 준우승했는데 이 성적은 북한이 국제무대에서 거둔 최고의 성적이다. 물론 이들 북한의 아마바둑은 98·99년 세계아마대회에서 2연패를 달성한 남한에 비하면 한참이나 떨어진다. 왜 그럴까. 북한은 바둑역사가 10여년에 불과하고 프로기전이 없어 아마바둑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구축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바둑을 육성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80년대 말부터. 89년 바둑협회를 결성했고 90년대 들어서야 지방에 지부를 조직했다. 특히 지난 92년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가 소년 바둑소조를 조직할 것을 지시한 이래 무섭게 성장했다. 현재 바둑인구는 2만~3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지난 95년에는 국내 전문기사제와 유사한 「완전선수제」를 도입했고, 97년에는 각종 체육대회에 바둑을 정식 종목으로 채택했다. 이보다 앞선 93년에는 8명을 선발해 중국으로 바둑유학을 보냈는데 대부분 북한의 대표선수로 성장했다. 문영삼, 최은아, 리봉일, 조새별 등이 그들로 현재 평양 만경대학생소년궁전의 바둑소조를 중심무대로 삼아 활동하고 있다. 모두 함남 함흥시 출신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이밖에 신예 주자로 남해, 최영우, 권미현, 림현철 등이 유명하다. 최형욱기자CHOIHUK@SED.CO.KR 입력시간 2000/04/25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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