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대의 알루미늄 업체로 명성을 날렸던 러시아의 루살(RUASL). 이 회사는 지난 6일(현지시간) 크레디스위스 등으로부터 두 달간 채무 상환을 유예 받으며 한 숨 돌렸다. 루살의 총 채무는 140억 달러. 이 가운데 74억 달러는 서방 은행들로부터 차입한 것이다. 이 회사의 소유자 올레그 데리파스카 역시 억만장자로서 명성을 날렸지만 동반 침체의 길을 걷고 있다. 루살의 위기는 러시아 신흥재벌인 '올리가르히'(Oligarch)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8일 뉴욕타임스(NYT)는 '올리가르히 최후의 날(?)'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경제 위기 속에 올리가르히들이 조만간 쓰레기통에 버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레그 데리파스카의 루살 역시 원자재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던 지난해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했으나 금융위기로 알루미늄 가격이 고점 대비 60% 폭락하면서 심각한 자금 압박을 받고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에 따르면 러시아의 기업들과 은행이 올해 중에 상환할 채무는 1,280억 달러에 이른다. NYT는 이 중 대다수는 올리가르히가 갚아야 하지만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지불 능력이 없다고 은행 관계자를 인용해 분석했다. 러시아 국가과학아카데미에서 엘리트를 연구하는 올가 크리슈타로프스카야는 "(올리가르히들이) 이번 위기의 격랑 속에 휩쓸려 가버릴 것"이라면서 "크레믈린이 결정권을 갖고 있다. 크레믈린이 원한다면 살아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시장에서 생사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생존의 위기에 직면한 올리가르히들은 실제 지난 1월 크레믈린으로 몰려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에게 자신들 소유의 자산을 러시아 정부가 국유화 해주고 대신 구제금융을 지원해 줄 것을 간청했다. 이 자리에는 올레그 데리파스카 뿐만 아니라 철강 재벌인 알리셔 우스마노프, 독신남 재벌로 유명한 금속투자자 미하일 크로코로프 등이 거물급들이 대거 참석했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 이미 루블화 방어에 2,000억 달러를 넘게 썼지만 통화가치는 절반 수준으로 폭락했으며 스탠다드앤푸어스(S&P)와 피치가 러시아 국가 신용등급을 낮추는 등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지난 1990년대 중반 사회주의 시절 국영 기업을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올리가르히들은 최근 몇 년간 석유, 천연가스 등 상품시장 호황을 등에 엎고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이들은 초 호화 요트를 구입하거나 개인 제트기, 영국과 프랑스의 대저책을 닥치는 대로 사들여 전세계인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세계 경제를 강타하면서 지난해 중반 이후 상품가격이 급락하자 급속한 몰락의 길을 걸고 있다. 현재 상당수 올리가르히들은 재무 구조가 극히 취약해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할 경우 파산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빚은 갚지 못해 재산을 은행에 압류 당하고 거지신세로 전락하는 이들도 등장했다. 올리가르히들과 거래를 해온 MDM은행의 한 임원은 구체적인 이름은 거명하지 않은 채 "구제금융을 받지 못한 부호들이 재산을 빼앗기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 증시가 폭락하면서 올리가르히들의 재산이 급감했다. 블룸버그통신의 조사에 따르면 금융위기 초기인 지난해 5월에서 10월 사이 러시아 상위 25위 부호의 재산이 2,300억 달러가 줄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