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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ing & Joy] 빛바랜 사진 같은 70년대 말의 추억

■ 4일 개봉 ‘사랑해 말순씨’<BR>중학생 통해 본 ‘그때 그 시절’문소리·이재승 감칠 맛 연기


영화 ‘사랑해, 말순씨’의 배경인 1979년, 그땐 그랬단다. 순박한 군상들이 옹기종기 살던 사람냄새 나는 서울 변두리가 영화의 무대다. 너덜너덜해진 미국 포르노잡지에 침을 흘리고 교실 친구들과 낄낄대며 육두문자를 주고받는 모습, 남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겪었던 중학교 시절 그대로다. 영화는 중학교 1학년 광호(이재응)의 눈을 빌려 시대를 훑어 내려간다. 세상은 시끄럽지만, 광호는 무심하게 일상을 지낸다. 화장품 외판원인 엄마 말순(문소리)이 교양 없이 구는 게 짜증나고, 옆방에 하숙하는 간호조무사 누나 은숙(윤진서)이 풍기는 향긋한 비누냄새에 머리가 아찔하다. 동네 바보 재명이의 짓궂은 장난이 싫지만, 재명이 엄마는 그렇게라도 놀아주는 광호가 고맙기만 하다. 영화의 갈등은 ‘행운의 편지’부터 시작된다. 독자여러분, 기억 나시는지. 편지를 받고 3일 안에 답장을 쓰지 않으면 불행이 온다는 그 ‘행운의 편지’ 말이다. 광호는 엄마를 시작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답장을 보낸다. 모두들 시큰둥해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때부터 좋지 않은 일들이 연이어 일어난다. ‘그 때 그 사람들’이 그렸던 독재정권의 처참한 말로나 ‘말죽거리 잔혹사’가 보여준 폭압적인 학교까지도 영화는 따뜻한 눈길을 건네며 추억으로 포장한다. ‘朴대통령 有故’가 찍힌 신문을 집어 들고 ‘유고’의 뜻을 몰라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광주에 큰일이 나’ 고향으로 달려간 옆집 누나의 속사정도 아직은 모른다. 그렇기에 영화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성장영화’로 자리매김한다. 사실 동네 골목을 끼고 아웅다웅 사는 우리네에게 신문 1면을 장식하는 일들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영화는 옆집 누나의 요염한 모습을 꿈꾸다 몽정을 지리던 창피함과 어느 날 문득 자글자글해진 엄마의 주름에 마음 짠해지는 감정을 추억으로 던져준다. 성공한 복고 영화가 그렇듯, 이 영화의 섬세한 시대 묘사 역시 탁월하다. 골목 어귀에 붙은 포스터 한 장,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까지도 영화는 70년대 말을 고스란히 재현한다. 짐짓 심각하고 우울하지 않으면서도 시대의 아픔을 놓치지 않는 감독의 섬세한 눈길은 “역사는 우리의 삶이다”라고 조용히 말한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인어공주’를 연출한 박흥식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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