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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인재대국] 3. 창업.전직 이상 열풍

「 KAIST 고시반」과학영재들이 모인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도 올들어 사법고시나 기술고시·변리사 시험 등을 준비하는 「고시 스터디그룹」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 KAIST 재료공학과 박사과정에 있는 L씨(27)는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전에는 일부 별종(?)들이 고시에 도전했지만 지난해부터 고시생들이 늘면서 아예 스터디그룹까지 생겼다』고 전했다. 그는 『과거 학생들이 다른 목적을 갖고 고시에 도전했다면 최근에는 미래 과학자에 대한 실망감이 크기 때문』이라며 『학생들에게 평생을 과학기술 개발에 바치겠다는 자세를 기대하면 오산』이라고 설명했다. 「과학한국」의 밑거름이 돼야 할 학생들마저 지난해 대덕을 휩쓸었던 구조조정의 한파를 보면서 본인 스스로 기술원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의 경우 이공계 학생들의 「고시열풍」은 더 심각하다. 최근 미국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서울대 출신의 한 과학자가 사법고시를 준비하겠다고 나섰다. 각 대학교의 법대 고시과목 강의에 공대·자연대 학생들이 구름같이 몰려드는 것은 이미 오래된 일. 학생들이 고시에 눈을 돌리고 있는 동안 대덕연구단지 기술연구 인력들은 전직 열풍에 휩싸여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 조영재(趙永載·자민련) 의원이 최근 대덕연구단지 연구원 1,01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 79%가 「현직을 떠나고 싶다」고 응답했다. 떠나고 싶은 이유로는 장래 신분불안(46.3%)과 연구의 자율성 결여(18.9%), 낮은 보수(15.4%) 등을 꼽았다. 대덕연구단지 출신 연구원이 설립한 벤처기업은 지난 3월말 현재 280개사. 지난 97년말의 193개에서 1년여 만에 87개가 늘어났다. 대덕단지 출신 벤처기업들의 친목단체인 「대덕21세기」의 원종욱(元鍾旭) 회장은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 중에 대덕 출신 연구원이 설립한 벤처기업은 350개를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元회장은 『지난해의 경우 연구원들이 구조조정에 떠밀려 벤처기업가로 인생행로를 돌렸다면 올해는 자발적으로 뛰쳐나오는 벤처기업가가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벤처 창업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연구소를 떠나 창업해야 하는 현실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각 연구소의 기술을 좌우하는 필수 요원들마저 벤처기업가로의 변신을 서두르고 있어 문제다. 정부출연연구소에 근무하다 최근 벤처기업을 설립한 Y씨(42·전자공학 박사)가 대표적인 사례. 정부가 지원하는 차세대 회로소자 부문의 연구팀장이던 Y씨는 국책과제마저 팽개친 채 팀원들을 모두 이끌고 독립했다. 그와 같이 근무했던 K박사는 『회로소자 부문은 Y박사가 핵심이어서 그가 떠나자 과제를 수행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연구소는 부랴부랴 Y박사가 창업한 벤처기업에 외부용역을 주는 형태로 무마했다』고 전했다. 그는 『요즘 연구소에서는 벤처기업을 설립한 연구원들을 마치 학업을 끝내고 새로운 세계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졸업생처럼 바라보는 분위기』라며 『연구원이 다른 직업을 선택하기 위한 중간단계로 전락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또는 장래가 보이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제2의 빌 게이츠를 꿈꾸며 앞다퉈 연구현장을 떠나는 현실을 벤처창업 열풍이라고 반갑게 받아들일 수 없는 까닭이다. 연구소에 반드시 남아주어야 할 고급 연구인력들이 학교로 가거나 외국기업으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정부출연연구소의 ATM 부문 연구팀장이던 C박사, 광전송장치 부문 연구팀장이던 P박사와 S그룹 계열 민간연구소에서 근무하던 K박사(38·무기화학 전공) 등 굵직굵직한 국책 연구과제를 수행하던 핵심연구인력들이 최근 국내 대학이나 외국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들이 이탈한 후 해당부문의 연구는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국책연구소 C박사(41)의 증언. 『H그룹 계열의 민간연구소에 근무하는 친구가 최근 미국의 조그만 기업체로 자리를 옮기려 한다. 연봉이 줄어들고 할 일도 연구분야가 아니지만 2~3년만 근무하면 영주권이 나온다는 조건에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 C박사 역시 최근 아들에게 「희망없는 과학자보다는 힘있는 판·검사나 공무원이 돼라」고 강조한다고 실토했다. 강주환 연세대 교수(물리학과)는 『박사 한명을 키우려면 10년의 세월과 큰 돈이 든다』며 『이들이 과학을 포기하고 다른 길로 가는 것은 엄청난 사회적 손실』이라고 우려했다. /김형기 기자 KKIM@ 박희윤 기자 HYPARK@ 김상연 기자 DREA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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