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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3월4일] <1334> 제시 치솜


[오늘의 경제소사/3월4일] 제시 치솜 권홍우 편집위원 ImageView('','GisaImgNum_1','default','260'); '좋은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뿐이다.' 인디언과 싸우던 한 미군 지휘관이 내뱉었다는 이 말은 당시 미국인들의 시각을 그대로 담고 있다. 백인들은 그토록 인디언을 멸시하고 증오하면서도 이 사람만큼은 예외로 여겼다. 제시 치솜(Jesse Chisholm). 스코틀랜드계 아버지와 체로키족 어머니 사이의 3남 중 장남으로 1805년께 태어난 그는 주로 인디언 문화 속에서 자랐다. 노예 매매업자인 부친이 집을 자주 비웠기 때문이다. 영어와 14개 부족 인디언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게 된 치솜은 부족과 백인 간 교역으로 돈을 모았다. 7개 인디언 부족을 대표해 연방정부와의 협상을 맡기도 했던 그는 남북전쟁 직후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새길 북상길에 올랐다. 물건을 팔기 위해서다. 여정은 험난했다. 텍사스를 출발, 오클라호마주를 거쳐 캔자스주 위치타까지 4개월의 여정 동안 강을 건너고 산을 넘으며 1,100여㎞의 교통로를 개척해냈다. 치솜의 행로는 바로 치솜 트레일이라는 이름을 얻으며 가장 분주한 교통로로 자리잡았다. 치솜 트레일의 최대 이용자는 축산업자. 마리당 2~6달러인 소가 북부와 동부에서는 10배 가격에 거래된다는 사실에 주목한 텍사스 축산업자들은 소떼를 몰고 치솜 트레일을 따라 이동한 뒤 철도에 실어 동부로 보내 거대한 수익을 얻었다. 1867년 3만5,000마리가 지나간 치솜 트레일은 치솜의 사망(1868년 3월4일) 이후 10년간 200만마리의 소떼로 붐볐다. 텍사스와 북동부를 잇는 축산유통망은 전쟁으로 소원해진 남부와 북부의 경제를 연결시키는 고리로 작용하며 고성장을 이끌었다. 쇠고기 수요의 폭증은 새로운 목초지로서 서부 대평원의 개발을 촉진시켰다. 치솜의 길은 국토 균형발전은 물론 지역화합까지 야기한 사회간접자본이었던 셈이다.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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