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일은 단순화해서 바라봐야 쉽게 이해되고 해결방안도 쉬이 찾아지는 경우가 있다. 복지공약 이행을 위한 정부의 재정운용방안과 이를 놓고 벌이는 정치적 갈등이 복잡하게 전개되는 상황을 보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다. 국정운영에 대한 복잡한 계산도 평범한 가정의 눈높이에서 국민을 설득하고 해법을 함께 고민하다 보면 쉽게 풀릴 수 있다.
복잡하고 딱딱한 얘기부터 해보자. 복지공약을 놓고 이를 지키기 위해 증세를 할 것인가, 아니면 증세 없이 복지공약을 축소할 것인가, 두 가지로 크게 의견이 갈리고 있지만 내부사정을 들여다보면 복잡하다. 공약가계부의 테두리 내에서 작성한 2013~2017년 정부예산안을 보면 정부는 복지예산을 2013년 97조4,000억원에서 2017년 127조5,000억원으로 5년간 565조원 늘리기로 했다. 연평균 증가율이 7%로써 잠재성장률 3%를 뛰어넘는다.
하지만 조세부담률은 2017년에 20.1%로 증세를 최대한 억제하겠다는 입장이다. 조세부담은 묶어 놓고 돈 쓸 곳은 많으니 국가채무는 2013년 443조원에서 2017년 600조원을 돌파할 것이라고 한다.
예산당국은 근래의 경제상황을 감안해 재정운용계획을 빠듯하게 짰다고 하지만 공약가계부 상의 복지예산 범위 내에서 운용하려면 복지공약 축소는 불가피해 보인다. 복지공약을 지키려면 공약가계부 내 다른 용도의 예산을 줄여 복지예산을 늘려야 한다. 운 좋게 경제상황이 호전돼 세입이 늘어나면 복지예산을 늘릴 수 있다. 경제상황이 좋아지지 않으면 세금을 더 거두거나 빚을 내서 복지를 해야 한다.
증세는 억제하겠다는 입장이므로 세금을 더 거두기 위해서는 세율을 올리기보다는 음성화되고 탈루된 세원을 찾아내야 한다. 또 하나의 방법은 어디 새 나가는 돈이 없나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여러 부처에 복잡하게 분산되고 세분화된 복지프로그램에서 조금씩 절약하고 낭비를 줄이면 큰 돈이 절약될 것이다. 이같이 복지공약과 정부재정운용 간의 관계는 복잡하다.
간단하고 부드러운 얘기를 해보자. 가계를 꾸리는 안주인은 한정된 수입을 갖고 요리조리 살림을 꾸려나가야 한다. 안주인은 따뜻하고 섬세하면서도 현명해야 한다. 식구들을 잘 먹이고 건강을 챙겨야 한다. 아이들 교육도 시켜야 하고 집도 마련해야 한다. 아플 때에 대비해서 치료비도 마련해놓아야 한다. 자식의 결혼 준비도 해야 하고 노후대비도 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다하려면 허리띠를 졸라매고 알뜰히 저축해야 한다. 허튼 곳에 돈 쓰지 말고 어디 돈 새는 곳이 없나 살펴야 한다.
되도록이면 빚은 내서는 안 된다는 친정 엄마의 말도 명심해야 한다. 빚을 내기 시작하면 빚이 빚을 부른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누누이 들어왔다. 특히 현명한 안주인이라면 미리 계획한 지출이 있어도 이를 마냥 고집하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현명하게 조율할 것이다. 이렇게 알뜰살뜰 살림하고 집안이 평안해져야 가계경제도 원활하게 돌아가 집안이 흥하지 않겠는가.
공약가계부 역시 현모양처가 살림하듯이 잘 짜면 된다. 국민생활의 구석구석을 잘 살펴 빈곤과 절망의 나락에 빠지지 않게 하고 질병의 질곡에서 빠져 나오도록 하고 아이 낳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노후가 걱정되지 않도록 하면 된다. 국민들이 건강하고 삶의 의욕이 충만해 열심히 일하도록 도와주면 된다.
특히 공약한 내용이라고 글자 그대로 지키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현명한 안주인이 가계경제를 고려해 목표를 수정하듯이 책임 있는 공직자라면 공약가계부를 손때가 닳도록 손질해야 한다. 국민이 십시일반 각출해 공직자에게 월급을 주고 연금을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공약가계부를 손질할 때에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면 갈등의 공약가계부가 화합의 공약가계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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