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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단, 현대그룹과 사실상 계약 파기 수순

현대건설 주주협의회(채권단)는 현대그룹과 맺은 양해각서(MOU)를 해지하는 수순밟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이 MOU 해지를 결정하고 현대그룹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박탈하면 예비협상대상자인 현대차그룹이 차순위 협상대상자가 된다. 하지만 이 경우 현대그룹과의 법률공방이 불가피하다. 특히 법원이 현대그룹이 신청한 MOU해지 금지 가처분을 받아들인다면 채권단은 난처한 상황에 몰릴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채권단은 법원의 결정이 난 뒤 차후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법원이 가처분을 받아들인다면 현실적으로 MOU 해지보다는 본계약을 거부할 가능성이 높고 기각한다면 곧바로 MOU 해지 후 차순위 대상자와 새로운 매각협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대출계약서 아닌 대출확인서로는 채권단 설득 어려워=현대건설 채권단의 법률 자문단이 현대그룹의 자금 소명자료가 불충분하다고 자문한 것은 현대그룹이 지난 14일 대출계약서가 아닌 2차 대출계약서를 낼 때부터 예견됐던 일이다. 현대그룹은 2차 대출확인서에서 현재 프랑스 나티시스은행 계좌에 있는 1조2,000억원의 자금은 ▦제3자가 담보를 제공하거나 보증한 사실이 없고 ▦현재 나티시스은행의 두 계좌에 들어 있다는 내용을 추가했지만 이는 기존에 제출했던 대출확인서와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나티시스은행이 담보나 보증 없이 자본금이 33억원에 불과한 외국 기업에 어떤 조건으로 거액의 자금을 대출했는지를 궁금해했던 채권단으로서는 대출확인서만으로는 의혹을 해소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실제 현대그룹의 2차 대출확인서를 바라보는 채권단의 시선은 싸늘했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통상적인 금융거래 상식으로는 무담보ㆍ무보증 방식으로 그런 대출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계약조건을 알고자 했던 것"이라며 "어떤 조건에 자금을 조달했는지를 알아야 '승자의 저주'를 피할 수 있는 상황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채권단 관계자는 "대출계약서나 그에 준하는 문서가 아닌 대출확인서를 낸 현대그룹에 실망했다"며 "정말로 현대건설을 인수하려는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고 전했다. ◇MOU 해지냐, 본계약 거부냐=채권단은 17일 주주협의회에 현대그룹과 맺은 현대건설 매매 MOU에 대한 처리방안을 안건으로 제출할 계획이다. 이후 주주사들이 내부협의를 거쳐 오는 22일께 주주협의회를 다시 열어 최종 결론을 낼 방침이다. 채권단은 그동안 현대그룹의 추가 소명이 부족하면 MOU를 해지하겠다고 밝혀온 만큼 MOU 해지와 관련한 내용이 담길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주주협의회에서 안건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80% 이상이 찬성해야 하며 외환은행ㆍ우리은행ㆍ정책금융공사 등 3사가 20% 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어 한 곳이라도 반대하면 통과될 수 없다. 현재 우리은행과 정책금융공사는 MOU 해지에 무게를 둔 반면 외환은행은 법률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로 다소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경우 현대그룹이 '합리적 범위 내의 자료제출'이라는 MOU상의 애매한 조항을 들어 채권단과 법률다툼을 벌일 가능성이 높아 현대건설 매각이 장기간 소송전으로 전개될 수 있다. 이에 따라 현대건설과의 MOU는 유지하는 대신 주식매매계약(본계약) 때 거부권을 행사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애매한 MOU 조항도 문제지만 현대그룹이 9일 법원에 신청한 'MOU 해지 금지 가처분'에 대한 법원의 결정에 따라 자칫하면 후폭풍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현대건설 매각주체 관계자들은 최근 들어 "MOU 해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에서 "MOU 해지를 포함한 다양한 대응방안을 논의하겠다"로 한걸음 물러서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매각주체 입장에서는 현대건설 매각을 이번에 성공시키는 것보다 향후 벌어질 소송전에서 승리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며 "법적 다툼의 요소가 있는 MOU 해지보다는 전적으로 채권단에 권한이 있는 본계약 체결을 거부하는 것이 보다 안전하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교통정리 나설까=현대건설 매각이 파국으로 치달으면서 현재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금융당국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이날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의 대응에 모두 문제가 있다"며 "현대건설이 다른 데 갈 데가 없다"고 작심한 듯 쓴소리를 했다. 진 위원장은 이어 "현대그룹은 설득력이 없는 논리만 내세우고 있고 현대차그룹은 (인수)한다고 하면서 엉성한 대목이 적지 않다"고 양쪽 모두를 비판했다. 그는 또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 채권단 주관기관과 법률자문 등의 행태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하며 "M&A 주간사, 법률 자문사 등은 수수료만 챙기려다 된서리를 맞고 일이 잘못되니 금융당국으로 화살을 돌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이 현대건설 매각에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 확인된 만큼 '액션'이 취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미 너무 많은 문제들이 얽혀버려 채권단 혼자서는 풀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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