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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서글픈 개혁의 부메랑

이용택 금융부장 ytlee@sed.co.kr

제일은행 본점 뒷골목의 한 음식점은 소주와 맥주를 각각 단돈 100원씩에 판매한다. 알량한 상술일지도 모르지만 어떻게든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해 커다랗게 써붙인 ‘소주ㆍ맥주 100원’이라는 문구가 쓴웃음을 자아낸다. 칠순에 가까운 어느 어머니는 주말만 되면 로또 복권을 맞춘다. 본인이 잘살기 위해서가 아니다. 행여나 큰 돈에 당첨되면 파산한 아들에게 보태주기 위해서다. 그 아들도 마찬가지고 그 아들의 아들 역시 복권 파는 가게를 기웃거린다. 다 가버린 2004년의 서글픈 현실이다. 정부는 올 한해 내내 ‘희망가’를 불렀지만 어느 것 하나 피부에 와 닿은 게 없다. 많은 사람을 잘살게 하겠다고 개혁을 주창한 정권이었는데 현실은 오히려 반대로 갔다. 정말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최근 재정경제부는 호언장담했던 5% 성장을 하지 못하는 이유를 들면서 사회적 변수로 접대비 실명제와 성매매특별법, 사교육비 규제, 추석 사정한파 등을 꼽았다는 후문이다.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개혁하겠다는 정책들이 경제를 옥죈 꼴이다. 취지는 좋았지만 시행시기가 잘못된 것일 수 있고 정책 여파에 대한 판단이 틀렸을 수도 있다. 어쩌면 경제 문제는 아예 고려 대상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판단이었든 그 결과가 가뜩이나 침체된 경제를 더욱 나쁘게 했다면 한번 반추해볼 필요가 있다.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들은 개혁대상이 아니고 개혁의 수혜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다. 가난한 사람을 풍요롭게 하는 게 진보와 개혁의 기준이라면 지금의 현실은 너무 이율배반적이다. 모건스탠리의 아시아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앤디 시에는 “경제에는 ‘공짜 점심(free lunch)’이 없다”고 했다. 정책이 잘못됐거나 임시방편적인 정책을 펴면 일시적으로 효과를 봐도 곧 후유증이 나타난다는 얘기다. 물론 경제라는 것이 한순간에 풀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시행착오도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잘못되거나 시기를 제대로 짚지 못한 정책의 죗값은 너무 크다. 인간사 역시 죄를 지으면 벌을 받지만 그 벌은 죄를 지은 당사자들에 국한된다. 경제에서는 그 범위가 다르다. 전 국민이 대상이다. 지금이 그런 형국이다. 연초 대통령은 지난해를 되돌아보며 “공부는 열심히 했는데 시험 성적은 좋지 않았다”고 자평했다. 그리고 1년 뒤 다시 시험을 치렀지만 올해 성적은 더 나쁘다.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도 성적이 안 오르면 이제는 공부하는 방법을 달리해볼 필요가 있다. 지난 2년 동안 우리 경제시스템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 제자리를 맴돌았다. 대기업은 현금만 재놓고 은행권은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라고 하면 겉으로만 생색을 냈다. 이를 비난하지만 이는 단지 여론몰이일 뿐 결코 이들만 탓할 게 아니다. 기업은 자선사업가가 아니다. 무턱대고 투자를 늘리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다. 반기업정서가 팽배할 때는 더욱더 그렇다. 금융권에도 대출을 늘릴 것을 요구하지만 부실이 쌓이면 누가 책임지는가. 물론 그 부실을 공적자금으로 메워준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경제는 찌들고 중소기업은 줄줄이 무너지는데 투자와 대출을 늘리라는 것 자체가 경제논리에 맞지 않는다. 지금까지 이런 상황이 반복됐다. 어느 대기업 총수는 “탁월한 인재 한명이 수천명, 수만명을 먹여 살린다”고 했지만 기업은 더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린다. 대기업이 돈을 벌어야 중소기업이 살고 음식점과 술집도 덩달아 산다. 그래야 서민들도 행복하다. 그러면 은행 대출도 늘리지 말라고 해도 자연스레 늘어난다. 이게 자본주의 경제다. 지금까지 이를 부정했거나 반대로 간 것은 아닌지 반성할 때가 됐다. 2년 동안 시행착오를 겪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경제로는 올해가 재수(再修)고 내년은 3수째다. 손님 한명이라도 더 끌어들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소주를 100원에 팔고 주말마다 로또 복권을 사는 노모가 늘어난다면 제아무리 좋은 개혁이라도 제대로 된 개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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