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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교육, 학생 선발 만이 전부인가

소녀경을 아시는지. 어른도 읽자면 어쩐지 낯뜨거운 고대 중국의 방중서(房中書)를 정부가 고등학생들이 읽어야 할 추천도서 목록에 포함시킨 건 지난 82년. 그리 먼 과거 일도 아니다. 주입식 교육에 대한 따가운 여론에 밀려 당시 문교부가 학생들에게 책을 읽게 하겠다며 공표했던 이 어이없는 사건의 벤치마킹 대상은 ‘그래도’ 프랑스의 유명한 논술시험 바칼로레아다. 교육철학 부재. 이 나라 교육의 탁상행정의 관성은 20여년이 지난 지금 과연 얼마나 바뀐 걸까. 인문계 고교의 기술 과목. 전문가들도 모를 토목ㆍ기계 관련 수치를 달달 외우고 입학시험장을 나오면서 머릿속에서 싹 지워버린 기억들은 기성세대만의 얘기도 아니다. 인상파를 보러 전시관 한번 찾은 적 없는 미술, 국ㆍ영ㆍ수 공부로 아예 대치돼버린 체육시간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면 아마도 이 땅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닐 터다. 이런 풍토 속에서 그나마 학생들에게 인문적 소양을 키우겠다고 몇 년 전 생겨난 게 논술. 그러나 그마저도 글쓰기 기술자만을 양산해내는 또 하나의 입시 과목으로 전락했을 뿐 독서를 통해 ‘된 사람’을 만들어보겠다는 본래 취지는 크게 퇴색하고 있는 현실이다. 국민 대다수가 ‘이건 아닌데’라고 느끼는 오늘, 정부와 대학간 펼치는 내신 반영 비율을 둘러싼 난타전이 점입가경이다. 교육 문제가 경제와, 정치 이데올로기와 연결되고 여기에 언론까지 합세에 패 가름을 하는 형국은 교육의 본질과는 한참 벗어난 궤도다. 내신반영비에서 633학제에 이르기까지 교육계가 갑론을박해온 사안들을 들여다보면 교육의 방법론, 그중에서도 학생 선발을 둘러싼 문제들로 덮여 있다. 그들에 가려 정작 간과되고 있는 것. 바로 우리 후세들에게 무엇을, 어떤 내용을 가르치는가, 콘텐츠에 관한 문제다. 국ㆍ영ㆍ수에서 교련에 이르기까지 지금 우리 청소년들이 감당해야 하는 과목 종류는 그 수를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렵다. 서구에서 따왔다고는 하나 정작 커리큘럼의 양과 질적 운영면에서 그들과도 또 다른 ‘별난’ 체계다. 우리 교육의 목표를 인문적 소양과 과학적 사고 함양 등 두 가지로 규정한다면 적어도 오늘 대한민국의 교육은 실패다. 인문적 소양 함양의 측면을 보자. 처음부터 제 길을 걷지 못했다. 지금처럼 오로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교육이라면 시대를 되돌려 학생들에게 인간의 도리를 가르치는 ‘당위지학(當爲之學)’-명심보감에 사서(四書)를 읽게 하는 게 차라리 옳을 일이다. 과학교육은 어떤가. 세계 속 기술 한국? 교육제도의 공이라기보다는 개인의 재능, 그리고 무엇보다 기업들 힘이 컸다. 세계 100위권 내 대학 한곳 없는 상황, 과학지 사이언스는 최근 적분기호를 모르는 한국의 공대생과 관련한 기사를 실어 한국 과학을 꼬집었다. 문화 영역 역시 나을 게 없다. 현장교육 전무(全無). 음악회에 미술관 한번 찾지 않는 현실은 문화가 생활이 아니라 그저 내신성적을 올리기 위한 과목일 뿐인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이쯤 되면 학생 선발제도만 가지고 마냥 다투고 있을 일이 결코 아니다. 시험 기술자를 만드는 교육에서 하루바삐 탈피, ▦남과 더불어 살아가기 ▦국제 감각 ▦과학적 지식 및 사고 방식 ▦문화 이해 등을 목표로 청소년 교과과정을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수십만 학생을 대상으로 한 사정적 시험의 기술적 한계를 가늠하지 못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교육의 본래적 목적이 가려지는 일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수십만원짜리 족집게 과외에 교수들까지 나서 ‘일류대 합격 비법’을 가르치는 상황에 가짜 학위 파동까지 터지며 세상을 흔들어대고 있다. 개개인에게만 손가락질할 문제일까. 쓸 만한 인재들이 이 땅을 줄줄이 빠져나가고 기러기 아빠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는 기막힌 가족제도를 만들어온 이 나라 교육 풍토가 종국의 문제다. 학생 선발을 둘러싼 묘안들에만 온통 쏠려 있는 시선을 청소년들에게 무엇을, 어떤 내용을 가르쳐 그들을 올바른 사회인으로 키우는가의 방향으로 마땅히 돌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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