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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력 산업에 대한 위기감이 총수들의 현장경영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환율하락과 내수침체 등 대내외 악재를 돌파하기 위한 주요 그룹 총수들의 글로벌경영 행보가 더욱 빨라지기 시작한 모습. 이건희 삼성 회장이 이달 말 유럽을 방문하는 것을 비롯, 구본무 LG 회장, 최태원 SK 회장, 신동빈 롯데 부회장, 박삼구 금호 회장 등이 앞다퉈 해외경영에 나선다. 재계 주변에선 “누구보다 국제 비즈니스와 산업 흐름을 잘 알고 있는 그룹 총수들이 최근의 경영 환경에 대해 경계심을 잔뜩 높이는 상황”이라며 “그룹의 활로를 해외사업에서 찾겠다는 전략적인 판단에 따라 그룹 체질을 글로벌 기업으로 바꾸기 위해 진두지휘에 나서고 있는 것”이라고 바라보고 있다. 그만큼 위기에 대한 수위가 높다는 의미다. ◇총수들, 줄이은 해외 행보=이 회장은 이달 말 유럽으로 출발해 다음달 말 중국 방문까지 한달 동안 해외에 머무를 계획이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은 독일ㆍ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을 방문해 독일의 구주사업본부 및 해외 생산기지 등을 돌아보며 삼성의 주력 제품인 휴대폰ㆍLCD TV 시장 등을 꼼꼼히 점검할 것”이라고 전했다. IOC위원인 이 회장은 다음달 말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스포츠어코드 행사에 참석, 스포츠외교에도 힘을 보탠다. 이 행사에는 IOC위원 100여명을 비롯해 전세계 800여명의 스포츠 인사들이 참석한다. 구 회장은 LG전자 등이 10년 넘게 공을 들여온 폴란드 등 유럽 시장을 다질 방침이다. 구 회장은 오는 5월께 LCD모듈 공장이 있는 폴란드를 방문한 뒤 유럽 총괄법인이 있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거쳐 영국 런던의 현지 법인 등을 둘러볼 계획이다. 그룹 관계자는 “암스테르담에서는 해외 경영전략회의를 주재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최 회장 역시 지난달 말 미국과 중동을 방문한 데 이어 여독이 풀리는 대로 다음달 다시 중동 지역을 찾는다. 원유공급은 물론 해외유전ㆍ가스전 개발, 정유ㆍ석유화학 플랜트 사업 등 다각적으로 중동 비즈니스를 전개할 예정이다. 그룹 관계자는 “최 회장은 지난해 글로벌리티의 제고 원칙을 수립한 후 17회의 해외출장에 해외 체류기간만 85일에 이르는 등 글로벌 강행군을 벌였다”며 “글로벌리티 심화를 위해 올해에도 글로벌경영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 부회장은 19일 중국 상하이를 찾아 식품 지주회사 출범식에 참석한다. 중국에 백화점ㆍ할인점ㆍ식품사업을 의욕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롯데그룹은 신 부회장의 진두지휘에 따라 내수 중심 그룹 체질을 탈바꿈하고 있다. 박 회장 역시 이달 중순에 카타르와 두바이를 찾아 금호산업이 추진 중인 국제공항 건설 입찰에 대한 보고를 받고 현지 사업장을 둘러본다. ◇시장 감각을 높여라=총수들이 해외현장 활동을 강화시키는 또 다른 이유는 ‘위기의 실체’를 직접 확인하고 이를 돌파할 해법도 마련해보자는 의도가 강하다. 특히 엔저 등으로 주요국 시장에서 국산 제품이 흔들리는 상황을 직접 점검, 현장 사령관으로서 전술을 새롭게 지시하는 동시에 임직원들의 사기를 독려하겠다는 다중 포석을 담고 있다. 대표적 현장경영 CEO인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은 지난달 22일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 첸나이(Chennai)에 소재한 현대차 인도 공장을 방문, 인도 현지 업체, 도요타 등 일본 차회사 등과의 치열한 시장 쟁탈전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정 회장은 이 자리에서 “인도 자동차 시장의 빠른 성장을 주목하고 있는 글로벌 메이커와의 치열한 경쟁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글로벌 시장에서 벌어질 무한경쟁에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인도 시장은 정 회장이 가장 애착을 갖는 곳으로 현대차의 다섯 군데 해외공장 중 유일하게 꾸준히 이익을 내왔다. 그러나 지난 1ㆍ2월 시장점유율 2위 자리를 타타사에 빼앗기는 등 현대차가 최근 들어 고전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승연 한화 회장도 세계경영을 주창하는 대표적인 글로벌 혁신 전도사다. 지난해 10월 창립기념사에서 “내수시장만 지키고 앉아 있는 텃새가 아니라 ‘대륙을 횡단하는 철새의 생존본능’을 배우라”고 설파한 김 회장은 1월31일 태국 방콕에서 전격적으로 ‘해외사업진출 전략회의’를 소집, 그룹의 개혁을 강조했다. 김 회장은 이날 무려 15시간 동안 철야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안 바뀌면 우리 미래는 없다. 변혁하고 또 변혁해야 한다”고 글로벌기업으로의 변신을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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