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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11월 6일] 원高를 경쟁력 강화의 기회로

한국인들이 공산당에 알레르기가 있는 것처럼 일본인들도 드물지만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있다. 엔고, 즉 엔화가치 상승이다. 대부분의 일본 매스컴은 엔고를 적의 침입처럼 다루며 엔고(高) 뒤에 반드시 불황이라는 말을 보태 '엔고 불황'이 선진국 일본 경제의 문패라도 떼가는 것처럼 겁을 먹인다. 여행 관련업종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이 상당한 거부감을 나타낸다. 엄청난 무역흑자에 따른 엔고로 수차례 어려움을 겪었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효율적 시스템을 정착, 제조업의 경쟁력을 높여왔지만 그 고통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마침 한국도 IMF외환위기 이후처럼 원저(低)로 인한 무역흑자와 해외 투기자본 유입으로 원고(高) 바람이 살살 불고 있어 엔고 위기를 돌파해온 일본의 경험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엔高 위기 극복한 日 벤치마킹을 일본이 지난 1973년 변동환율제를 도입한 이후 엔화 가치는 36년 만에 달러에 비해 네 배나 올랐다. 그런데도 일본의 제조업은 우리보다 땟거리가 있어 보인다. 엔화 값이 달러에 비해 네 배나 뛴 지금도 일본 기업들이 세계시장을 상대로 장사를 계속할 수 있는 저력은 무엇일까. '궁리와 노력' '선물거래' '해외이전'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선물거래는 실수요에 한정해 운영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비용 상승의 근본 대책이 되지는 못했다. 둘째, 해외 이전은 선물거래와는 무게가 다르다. 통계적으로도 확인됐지만 엔고가 진행될수록 해외 이전도 급증했다. 일본 기업이 무자비한 엔고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공의 상당 부분은 해외 이전의 몫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최고의 공훈은 역시 '궁리와 노력'에서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해외 이전을 한 나라가 모두 성공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원래 경쟁력이 있는 제품인가'에 달렸다. 그럼 여기서 일본 기업의 엔고에 대한 궁리와 노력을 살펴보자. 한국전쟁으로 떼돈을 챙긴 일본 기업이 전후 복구에 성공하고 나서도 '1달러=360엔'으로 묶여 있었기 때문에 일본 상품은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하지만 1973년 변동환율제로의 전환은 수출 기업의 수익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석유파동으로 인한 광란의 물가는 소비자의 구매력을 크게 떨어뜨렸다. 그러자 일본 기업들은 엔이 비싸진 만큼 경비절감을 위해 노력하고 에너지절약형 산업을 필사적으로 밀어붙였다. 반도체로 대표되는 전기ㆍ전자 업계의 경박단소(輕薄短小) 제품, 저연비 엔진을 탑재한 자동차는 근 40년간 일본의 수익원이 돼왔다. 외국의 저임금보다 생산성이 높은 산업용 로봇을 개발하고 다능공 육성, 부품 수 줄이기, 생산 소요기간 단축, 강도 높은 개선운동을 실시해 비용절감에 성공했다. 경비절감 차원에서 사장실을 없애고 에어컨을 켜지 않은 채 여름을 나기도 했다. 역경을 활용한 것은 제조업만이 아니다. 석유파동으로 경영위기에 몰렸던 야마토운수의 오구라 사장은 '개인화물로 사업을 바꾸자'는 사고의 전환으로 택배업 진출을 결단했다. 비용절감등 독자 진화노력 필요 종신고용으로 상징되는 일본식 경영이란 것도 이 시기부터 정착된다. 물론 그 전부터 있었지만 많은 회사들이 이 제도를 도입한 것은 이 때부터다. 석유파동으로 물가가 고삐 풀린 소처럼 뛰니까 경영자들은 노동자들의 요구를 수용, 임금을 올려줬다. 하지만 이듬해부터 임금은 조금만 올려주고 고용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돌아섰다. 땅 짚고 헤엄을 치던 일본 기업들이 엔고와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궁리하며 헤엄 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 기업들이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을 쌓아가려면 원고와 같은 역경은 꼭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자동 베틀로 창업해 큰 도산 위기를 경험했던 도요타도 이러한 역경을 슬기롭게 헤쳐나왔기 때문에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원고(역경)=기회'라는 발상 아래에 독자적인 진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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