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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소통' 못하는 기업들, 정부 고강도 압박에 벙어리 냉가슴

정책에 비협조·비판하면 세무조사·과징금 등 제재<br>재계 불똥 튈까 전전긍긍<br>당장은 목표달성 하겠지만 시장원리 훼손·기업 활력 저해<br>'정부 독주' 우려 목소리 커져



정부 방침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지 않거나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 기업들이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등을 앞세운 정부의 전방위 공세에 곤혹을 치르고 있다. 이 같은 사례는 정부의 압박에 이의를 제기했다가 사실상 보복조치를 당한 꼴이어서 재계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대표적인 보복사례는 삼성 계열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꼽을 수 있다. 국세청은 최근 삼성물산과 삼성중공업ㆍ호텔신라 등 삼성 계열사 3곳에 대한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시작했다. 국세청과 삼성 측은 "4~5년마다 하는 정기 세무조사"라며 특정 의도가 있는 게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지난달 이건희 삼성 회장의 발언이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달 10일 전국경제인연합회 정기 회장단 회의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현 정부의 경제운용 성과에 대해 "낙제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발언을 접한 청와대와 정부는 "너무 오만하다" "그런 말을 함부로 하느냐"며 강한 불쾌감을 나타냈다. 삼성 측은 오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됐다는 게 정ㆍ재계 안팎의 시각이다. 재계에서는 같은 날 동시에 삼성 계열사 세무조사를 개시하고 조사기간이 길 뿐만 아니라 서울지방국세청이 나선 점 등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조사의 성격이 강하다고 보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이 본보기로 걸린 것 같다"며 "앞으로 재계는 숨을 죽이고 정부 요구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1월 이명박 대통령의 "기름 값이 묘하다"는 발언 이후 석달 가까운 기름값 인하 압박에도 꿋꿋이 버틴 정유업계도 급기야 공정위의 '원적지 관리' 담합 조사라는 직격탄을 맞고 무릎을 꿇었다. 정유사들은 정부의 압력이 거세질 때마다 "휘발유ㆍ경유 등 석유제품의 영업이익률이 3% 내외에 불과하다"며 맞섰다. 이에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2월9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보다 한국의 석유제품 값이 비싸다"고 지적했지만 정유사들은 "잘못된 통계"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다음날인 10일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직접 원가계산을 하겠다고 몰아붙였지만 정유사는 꿈쩍하지 않았다. 윤 장관은 지난달 15일 서초구의 주유소 2곳을 방문해 "주유소들은 소비자들에게 가격이 공개돼 투명한 경쟁이 이뤄지고 있지만 정유사들은 그렇지 못하다"면서 "(기름 유통과정에) 확실히 독과점에 따르는 문제가 있다는 게 시장의 지배적 견해로 정부도 같은 생각"이라며 정유업계를 재차 공격했다. 바통을 이어 최 장관은 지난달 23일 "영업이익이 나는 정유사들은 적자를 내고 있는 한국전력이나 제당업계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 성의 표시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최후통첩성 경고를 날렸다. 결정타는 지난달 29일 공정위가 정유사들의 원적지 관리 행태를 담합으로 규정해 수천억원의 과징금을 추진하자 결국 SK에너지는 이달 3일 리터당 100원 인하를 발표하며 두 손을 들어버렸다. 이어 S-OILㆍ현대오일뱅크가 100원 인하를 결정했고 GS칼텍스 역시 인하 방침을 밝혔다. 정부의 압박에 기업들이 무릎을 꿇은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롯데의 '통큰치킨', 캐피털업계의 고금리 문제도 정부의 공세에 두 손을 든 비슷한 유형으로 꼽힌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의 '초과이익공유제'를 놓고 재계가 강한 비판을 한 데 대해서도 역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논란이 정점에 달한 시점에서 청와대는 정 위원장의 사표를 받아들이지 않고 신임의 뜻을 분명히 했다. 이를 계기로 정부와 여권 역시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한 이견을 자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재벌기업의 계열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관행이 국민정서에 반할 뿐만 아니라 동반성장에 역행한다며 과세 방침을 천명했다. 대주주들이 소유한 비상장 계열사들이 관련 대기업들의 일감을 독식해 큰 돈을 벌고 있는 것을 일종의 증여ㆍ상속으로 보고 무거운 세금을 매기겠다는 입장이다. 이는 재벌그룹치고 해당되지 않는 곳이 없는 사안이다. 정부의 압박이 단순 엄포가 아니라 강도 높은 제재가 수반된다는 것을 확인한 재계는 한 마디로 전전긍긍하고 있다. 당장 오른 원자재 값 때문에 철강 값 인상을 추진했던 포스코 등 철강업계는 이런 분위기에서 가격인상을 했다가 어떤 불똥이 튈지 몰라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이 같은 정부의 독주에 대해 재계에서는 당장 원하던 정책 목표를 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시장경제원리를 훼손하고 불확실성을 높여 기업과 경제의 활력을 크게 떨어뜨릴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관계자는 "정부와 소통이 안 되는 게 큰 문제인데 정부는 기업의 얘기를 아예 들으려 하지 않고 있다"며 "정해진 각본대로 기업들을 몰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기업하기 힘든 환경이 돼버렸다"며 "기업들은 빨리 (정권이 바뀌도록) 시간이 가기만을 바라는 지경이 됐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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