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10일 미주개발은행(IDB)총회가 열리고 있는 일본 오키나와에서 다음달 한ㆍ중ㆍ일 중앙은행 총재들의 회동 소식을 전하며 3국간 통화연대에 대한 큰 그림이 그려지고 있음을 내비쳤다. 우연히도 다음달에는 이스탄불에서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에서 3국 재무장관 회담도 예정돼 있다. 지난해 11월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3국 정상간에 연대 논의가 이뤄진 후 6개월 만에 구체적인 논의의 틀이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통화공조에 대한 3국간 논의가 시작된 것은 지난 97년 외환위기 전후. 당시 일본은 달러 패권에 대항한다는 명분으로 아시아통화기금(AMF) 창설을 처음 제안했다. 하지만 이는 미국의 그늘에 있는 국제통화기금(IMF)의 반대와 주도권 상실을 우려한 중국 측의 소극적 태도로 사실상 유야무야됐다. 이후 아시아권에 유럽의 유로화를 모델로 ‘아시안 유로화’를 도입하는 방안 등 다양한 공조 방안들이 나왔지만 3국간 역학관계가 미묘하게 엇갈리면서 결실을 맺지 못했다. 6년여에 걸친 통화연대는 이처럼 게걸음만 지속해왔다. 이 같은 상황은 올들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약(弱)달러 현상이 이어지고 미국이 쌍둥이 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과 중국 등에 통화절상 요구를 해오면서 공조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원화 환율이 가장 빠른 속도로 하락하면서 공조의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박 총재는 “플라자합의처럼 선진국과 후진국이 협력하는 새로운 형태의 국제협약이 필요하다”는 점을 잇따라 강조해왔다. 김종만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3국 모두 미국에 수출해서 먹고사는 지역인데 (공조 없이) 달러약세가 지속될 경우 생존의 위협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라오스 회담에서 주도적으로 환율안정을 위한 3국간 연대를 제안한 것이나 박 총재가 이날 “아시아 국가들이 외환보유고와 경상수지 흑자가 많다고 표적이 돼 있기 때문에 공동으로 방어하는 방안을 논의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 같은 상황과 연결돼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3국 재무ㆍ통화 수장들의 잇따른 회동이 ‘연대’를 보장해준다고 확신하기는 힘들다. 무엇보다 중국이 여전히 소극적이다. 3국간 공조는 필연적으로 위앤화의 통화절상과 연계돼 있다. 위앤화의 급격한 절상은 중국 은행들의 부실을 수면 위로 노출시킬 수 있고 외국자본의 이탈로 이어질 것이라고 중국정부는 우려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국은 자국 중심의 아시아통화연맹을 원하고 있다. 한국이 주도적으로 공조의 논의를 이끌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원화가 배제된 중일간 공동 통화인 ‘엔민폐’ 도입에 대한 논의도 나오고 있다. 3국이 통화연대의 필요성을 주창하면서도 여전히 ‘동상이몽’에 빠져 있는 셈이다. 오는 5월 모처럼 이뤄질 경제(통화) 수장들의 회동에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큰 기대를 품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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