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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비잔틴 제국 최후의 날, 두 영웅은 너무도 달랐다

■술탄과 황제(김형오 지음, 21세기북스 펴냄)<br>함대 이끌고 언덕 넘어간 술탄 배려 깊지만 우유부단한 황제<br>콘스탄티노플 함락 전후 리더십 충돌 관점서 통찰

유일하게 남겨진 콘스탄티누스 11세 황제의 초상은 15세기 작품으로, 이탈리아 오데나의 에스텐스 장서고에 소장돼 있다. 사진제공=21세기북스

술탄 메흐메드 2세의 초상은 죽기 5개월 전에 그려진 것으로, 윗입술까지 내려온 매부리코가 강한 인상을 풍긴다. 영국 내셔널갤러리 소장. 사진제공=21세기북스


배를 이끌고 산을 넘은 사나이가 있었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술탄 메흐메드 2세다. 스물 한 살의 패기 넘치는 이 지도자는 철벽수비로 막힌 바닷길을 뚫기 위해 수 척의 배를 끌고 해발 60m에 이르는 산등성이와 비탈진 언덕을 넘어 갔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나이가 있다. 승산이 없어 보이는 싸움임에도 끝까지 항복을 거부한 채 자신이 사랑하는 제국과 함께 장렬히 산화 한 비잔틴 제국 최후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다. 오스만투르크에 의한 콘스타니노플의 함락은 1,400년 간 지속된 로마 제국 최후의 날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동양의 이슬람문명에 의해 정복된 서양의 기독교 문명이라는 점, 또한 중세에서 근대로의 시대 전환의 기점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

책은 1453년 5월 29일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는 날을 중심으로 50여일간 치열하게 벌어진 전쟁을 통해 두 제국의 리더십과 전쟁의 과정, 두 영웅의 인간적 고뇌를 생생하게 담고 있다. 내용 못지않게 눈길을 끄는 것은 저자의 이름 석자다. 464쪽짜리 방대한 분량의 역사서적을 쓴 주인공은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와 기자와 대통령 정무비서관, 한나라당 원내대표 등을 거쳐 입법부 수장을 지낸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다. 저자는 마치 '종군기자'가 된 듯한 열정을 담아 '사실(史實)과 사실(事實) 만을 추구하겠다'는 각오로 집필에 임했고, 특히 동서양의 운명을 가른 지도력의 충돌에 관한 부분에서는 역사를 리더십의 관점에서 통찰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저자는 두 주인공을 두고 "메흐메드 2세는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강한 인물인 반면 콘스탄티누스 11세는 배려는 깊지만 다소 우유부단한 인물"이라고 분석하며 "이들에게서 배워야 할 점은 지도자의 그릇"임을 강조했다.

집필 계기에 대해 저자는 2009년 터키를 방문했을 때 "이스탄불 군사 박물관에서 함대를 이끌고 가파른 갈라타 언덕을 넘어간 메흐메드 2세의 이야기를 접하고 충격과 전율을 느꼈다"고 밝혔다. 이후 저자는 4년간 4번의 터키 방문과 47일간의 장기 체류, 수백 권의 자료, 수십 명의 관련 학자들을 통해 이 전쟁의 실체를 파고 들었다.



책은 크게 세 개의 장으로 나뉜다. 1장에서는 마지막 총공세 '4일간의 기록'을 영화처럼 재현해냈다. 전쟁의 과정과 사용된 무기, 전략과 전술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의 혼란까지도 그려냈다. 2장은 콘스탄티누스 11세 황제의 '일기'라는 모티브를 기반으로 창조됐다. 황제가 함락의 그날까지 쓴 두 달간의 일기장과 이에 대한 술탄의 비망록이라는 구성을 통해 전쟁을 치르는 두 리더의 전략과 고민, 인간적 고뇌 등을 엿볼 수 있다. 가상의 기록임에도 일기와 비망록 형식을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한 덕에 읽는 이의 이해가 쉽다. 3장은 1453년에서 559년이 흐른 2012년 5월29일부터 6월1일까지의 현대 시점으로 옮겨와 비잔틴 제국의 멸망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뒤좇는 작가의 이야기가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흥미진진한 이야기 구조 외에도 콘스탄티노플 함락에 대한 방대한 자료 정리, 테오도시우스의 삼중 성벽의 구조와 최후의 공성전의 과정, 군사들을 독려하는 술탄과 황제의 연설문, 각종 도판 등이 덧붙어 인문학적 사료로서의 가치를 높인 책이다. 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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