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가 달라졌다. 그동안 대표적 보수적 기업으로 꼽혔던 롯데는 요즘 재계에서 '젊은 롯데'로 지칭되고 있다. 발 빠르고 과감한 투자와 신속하고 정확한 의사결정, 남성과 여성 간 차별의 벽을 허무는 신세대 경영 등이 젊은 롯데의 면모이다.
이 같은 롯데의 변신에는 이유가 있다. 10일 출범 1주년을 맞는 신동빈 회장 체제는 지난 반세기간 신격호 총괄회장이 만들고 키운 롯데를 일신시켰다.
'젠틀맨 경영자'로 불리는 신 회장의 경영혁신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 롯데그룹 안팎의 평가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 한 해 신 회장이 부친의 창업성과를 지키고 더 큰 발전의 길을 찾는 과제를 훌륭하게 수행했다"면서 "지난 반세기 동안 신 총괄회장이 이끌어오던 롯데의 경영구도가 신 회장 체제로 급속히 재편될 것"이라고 밝혔다.
◇과감해진 투자와 빨라진 의사결정=지난해 2월 신 회장이 부임한 후 롯데에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무엇보다 의사결정 시스템이 눈에 띄게 빨라졌다는 점이다. 신 회장은 부임 직후인 지난해 3월 직급체계를 대대적으로 손질했다. 지난 40년간 유지해온 연공서열형 직급체계를 폐지하는 대신 구성원들의 역량과 직책에 따른 보상체계를 강화하고 팀장과 매니저 직책을 새로 도입하는 '그레이드(Grade) 인사제도'를 채택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부장, 차장, 갑ㆍ을 과장, 대리, 사원으로 구분되던 직급은 수석ㆍ책임ㆍ실무자 등으로 대폭 간소화됐다. 이러한 변화는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한 조직으로 바꾸라"는 신 회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지난해 6월 홍콩에서 전환사채(CB)를 발행해 약 1조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한 것도 신 회장의 선제적인 경영전략이 빚어낸 작품이다. 한 발 빠른 의사결정 덕분에 글로벌 재정위기가 본격화하기 직전에 두둑한 실탄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평가다.
보수적인 경영기조를 이어오던 롯데가 올해 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를 발표하며 공격경영으로 돌아선 것 역시 신 회장 취임 이후 나타난 변화다. 올해 초 롯데는 지난해보다 무려 50% 가까이 증가한 6조7,300억원을 투자하는 경영계획을 발표했다. 이 같은 결정은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겠다"는 신 회장의 의지가 크게 작용한 결과다.
◇'젊은 롯데'로 옷을 갈아입다=롯데는 지난 3일 50대 중ㆍ후반의 젊은 경영진을 주력 계열사의 최일선에 전진 배치하는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올해로 만 57세인 신 회장과 비슷한 연령대로 계열사 사장단을 꾸림으로써 신 회장 체제를 본격 가동한다는 구상이다. 실제로 그룹의 얼굴과도 같은 롯데백화점 대표에는 신헌(58) 롯데홈쇼핑 사장이 선임됐으며 롯데제과 대표는 김용수(54) 롯데삼강 대표가 기용됐다. 또 관광ㆍ레저사업을 총괄하는 호텔롯데의 3대 사업 부문 역시 50대 최고경영자(CEO)들이 모두 자리를 꿰찼다.
신 회장 체제 이후 여성인력들이 중용되기 시작했다는 점도 눈에 띄는 변화다. 롯데는 유통ㆍ서비스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지만 여성임원은 2010년 외부에서 영입한 박기정 백화점 상품본부 이사를 제외하면 전무했다. 하지만 신 회장 부임 이후 올해 정기 임원인사에서 내부승진을 통해 2명의 여성임원이 처음으로 탄생했다. 평소 "여성인력을 잘 활용하는 기업이 성공하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강조해온 신 회장의 영향 때문이다. 롯데는 지난해 하반기 신입사원 공채에서도 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30%를 넘어서기도 했다.
롯데의 한 고위임원은 "신 회장이 부임한 후 전반적인 그룹 분위기가 전과 달리 '스피드'하게 돌아간다는 느낌이 든다"며 "특히 인수합병(M&A) 과정에서도 되도록 뜸을 들이지 않고 신속하게 결정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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