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택리지'는 사화(士禍)에 연루돼 유배지에서 젊은 날을 보내던 이중환이 20여 년 동안 전 국토를 발로 밟는 방랑생활 끝에 탄생시킨 조선 후기의 인문지리서다. 신정일은 택리지를 교본 삼아 30년간에 걸친 질긴 답사 끝에 다시 쓴 문화역사지리서 '新택리지'는 시리즈를 내놓았다. 저자는 '삼남대로'라 불리던 전남 해남에서 서울 남대문까지 413㎞ 길을 보름에 걸쳐 걸었다. 불과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수많은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걸었던 길이었으며 우암 송시열과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이 유배를 떠나갔던 길이기도 하다. 동래에서 문경새재를 거쳐 서울에 이르는 '영남대로'도 열 나흘 동안 걷고 또 걸었다. 영남대로 역시 옛날 과거길이면서 상업로였으며 조선통신사들이 일본을 다녀올 때 통과했던 길이었고 임진왜란 때는 일본군들이 파죽지세로 침입해 왔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저자가 이토록 모질게 걷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는 책을 통해 지금이라도 보존하지 않으면 금새 사라져갈 것들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이 책은 기록이나 문화재로 전시되고 보존돼 있는 것보다는 마일령이나 대문령, 목계나루나 가흥창 터, 영남대로와 삼남대로 등 지금 서둘러 보존하지 않으면 우리 역사 속으로 묻혀 버릴 것들을 살피라고 힘주어 제안한다. 책 속에는 사라져 가는 길, 사려져 버린 아름다운 옛 이름, 그리고 옛 형체를 떠올리기도 힘들게 변해버린 산과 강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간절히 찾는 몸부림이 스며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기존에 나온 문화유적지답사서와는 차별화된 인류학적 보고서이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한 장의 소중한 지도다. '발과 가슴으로 쓴 국토 교과서'라는 부제목에 걸맞게 국토의 산과 강을 배경으로 마을의 다채로운 풍경과 숱한 사연들을 담아낸 따뜻한 시선도 주목할 만하다. 1만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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