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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9월6일] 파리의 택시부대

[오늘의 경제소사/9월6일] 파리의 택시부대 권홍우 풍전등화의 파리, 피난민 대열이 꼬리를 물었다. 1차 세계대전 발발 한달여. 독일군이 파리 외곽 40㎞까지 진출하자 프랑스 정부가 강화조약을 준비 중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프랑스군은 예비대를 급조했다. 문제는 이동수단. 철도는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파리 방어사령관 갈리아니 장군이 아이디어를 냈다. ‘택시!’ 1914년 9월6일 밤10시, 택시부대 1진 10여대가 전선으로 떠난 후 기사들이 제 발로 모여들었다. 2기통 9마력짜리 르노 택시 한대당 병사 5명씩 모두 600여대가 수송한 병력은 총 6,000여명. 기대하지 않았던 지원병은 파리 방어전, 마른 전투의 승패를 갈랐다. 프랑스ㆍ영국 연합군의 완승. 단기전을 모색했던 독일의 계획도 뒤틀어졌다. 1차 대전의 흐름을 바꾼 이 전투를 프랑스는 ‘마른의 기적’으로 기억한다. 양측에서 30만명이 격돌한 전장에서 택시의 역할이 과장됐다는 평가도 있지만 기사들의 참여가 국민적 단결을 이끌어냈다는 점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전쟁기간 내내 프랑스 국민들은 자기 승용차와 트럭, 심지어 경주용 차까지 동원해 군수물자 수송에 나섰다. 파리의 택시부대가 보여준 내연기관을 이용한 병력수송의 효율성에 주목한 각국은 자동차를 적극 도입했다. 말 대신 기계가 주도한 장기전의 승패를 결정한 것은 석유. 당시 최대 산유국인 미국이 낀 연합국은 유전을 확보하지 못한 독일을 물리쳤다. 석유 의존도는 갈수록 커간다. 1차 대전 때 4,000마력이던 미군 1개 사단의 기계력은 2차 대전에서는 18만7,000마력으로 늘어났다. 요즘은 그 10배가 넘는다. 수요가 늘면 가격이 내려가야 하는데 정반대다. 한정된 자원을 확보하려는 경쟁 속에 국제유가는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입력시간 : 2006/09/05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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