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여년 동안 인류의 사랑을 받아온 그리스의 고전 '오이디푸스'가 지난해 재단법인으로 독립한 국립극단의 창단 무대를 장식한다. 지난해 11월 손진책 예술감독이 취임한후 무대에서의 첫번째 공식 행보다. 5일 서계동 국립극단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작 발표회에서 손진책 예술감독은 "고전비극과 현대적 상상력의 조우를 통해 연극 고유의 감동을 관객들에게 전하겠다는 취지로 작품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손 예술감독은 "기원 전 5세기 그리스 아테네인들은 종교에 기초한 전통 윤리와 인간 해방을 선포하는 인본주의라는 새로운 가치관 속에서 혼란을 겪었으며 그런 혼란이 오이디푸스를 통해 투영된 것"이라며 "말로 표현하기조차 힘든 가치관의 혼란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오이디푸스가 던지는 화두는 유의미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존 연극 작품에서는 오이디푸스의 영웅성과 초인성에 사로잡힌 경향이 짙었다면 이번 무대에서는 평범한 인간으로서 한계를 지닌 오이디푸스에 초점을 맞춘다. 뛰어난 지혜의 소유자, 한 나라의 통치자인 동시에 신의 반열에 오르려는 열망의 인간이었던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야망과 오만으로 인해 결국 파멸을 맞는다. 지상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서 성공과 실패, 상승과 추락을 함께 맛본 그는 인간이 가진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번 작품의 연출을 맡은 한태숙 씨는 "그리스 비극이라는 형식에 갇혀 장엄하고 거룩한 이야기에 압도되지 않으며 상투적인 영웅의 표상을 제시하지도 않는다"며 "우리의 주인공은 퀭한 눈으로 바삐 길을 가다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기도 하는 거리의 남자이자 그저 보통 인간일 뿐"이라고 말했다. 오이디푸스도 결국 평범한 보통 남자일 뿐이라는 출발점에서 현대적 인물상에 그를 투영했다는 것이 이번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다. 우연히 사람을 죽이고 어머니를 아내로 맞는 비운의 주인공은 인생의 성공 가도를 달려가다가 어느 순간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치명적인 상처를 입기도 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이기도 한 셈이다. 제작진은 이번 작품에서 오이디푸스의 인간적인 면모를 끄집어내는 데 만족하지 않고 그리스 비극의 원형을 동시대적 상상력과 현실인식 안에 녹여내 관객들로부터 낯설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데자뷔(기시감)를 남긴다. 또한 고전의 원작 대본을 구어적이고 현실적인 언어로 풀어 작품 전반에 동시대성을 확보하면서 신화 속 주인공을 현실로 데려온다. 공연은 오는 20일부터 2월 13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펼쳐지며 이상직, 박정자, 서이숙, 김종구 등 쟁쟁한 연극 스타들이 출연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