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지도박물관' 시대를 담고 국운을 가르고 역사를 만드네 존 클라크 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펴냄대동여지도 나오기 전 日은 세계지도 그려내지도 제작기술 발달따라 나라의 운명 엇갈려 권홍우 편집위원 hongw@sed.co.kr 헬리혜성과 진화론, 그리고 국민연금. 전혀 관계없어 보이지만 공통분모가 있다. 뭘까. 지도다. 지도는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지식의 축약ㆍ융합본이면서 시대를 반영한다. 신간 번역서 ‘지도박물관’을 따라가 보자. 76년을 주기로 지구 근처를 찾아오는 혜성을 발견한 에드먼드 헬리는 천문학자 보다는 지도제작자로 일한 시간이 더 많다. 해류와 계절풍이 명시된 헬리 지도는 북미식민지를 오가는 영국 함선의 필수품이었다. 탐험가이자 지도제작자, 동식물학과 지리학자로 다윈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독일인 훔볼트가 없었다면 창조론의 창시자라는 타이틀은 다른 사람의 몫이었는지도 모른다. 국민연금과 지도의 관련성은 보다 직접적이다. 영국 왕립통계학회장을 맡았던 사회개혁가 부스는 런던의 빈부격차를 통계지도로 담아낸 후 끈질긴 투쟁을 통해 1908년 국민연금의 초기형태인 ‘노인연금’을 이끌어냈다. 다빈치의 걸작 ‘모나리자의 미소’도 지도와 관련이 있다. 군사적 모험을 즐기던 한 귀족 밑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군사용 지도를 제작하던 다빈치는 귀족이 갑작스레 사망함으로써 비로서 자유를 얻고 대작을 그렸다. 지도는 점과 선의 연결 뿐이지만 모든 것을 담는다. 한 시대가 또는 국가가 추구하는 염원과 목표를 전력을 기울여 표현하기 때문이다. ‘역사상 가장 주목할 만한 지도 100가지’라는 부제가 붙은 ‘지도박물관’은 375쪽이라는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인간의 철학과 예술, 과학, 문화사를 깊이 있게 그려냈다. 북유럽과 오스트레일리아, 메소포타미아의 신화에서 지하철 노선도, 쓰나미까지 포괄한다. 지도의 역사를 알면 ‘반지의 제왕’을 보다 재미있게 읽거나 감상할 수도 있다. 책은 영웅전을 읽는 듯한 재미도 선사한다. 마차 사고로 다리를 다쳐 함정근무가 불가능해진 미해군 장교 매슈 머리는 병참부 사무실에 처박혀 낡고 곰팡이 먹은 수천권의 항해일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전세계 바다의 해류와 계절풍을 일목요연하게 담긴 해도다. 큰 바다에 증기선들이 다니는 항로가 형성된 것도 해양 과학의 아버지로 꼽히는 그 덕분이다. 지도는 운명을 가른다. 지도 하나로 콜레라가 예방되고 2차대전의 흐름이 갈린 적도 있다.적은 병력으로도 북군을 연파했던 남군 스톤월 잭슨 장군의 신화도 부관 호치키스가 즉석에서 만들어내는 야전지도 때문에 가능했다. 서구가 동양을 추월한 시기는 지도제작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한 시기가 정확히 일치한다. 대영제국의 초석을 닦은 엘리지베스 여왕은 누구보다 지도제작에 정성을 기울였다. 주요 목적은 안보. 덕분에 영국은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물리치고 강대국으로 발돋움했다. 반면 개인의 발품으로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는 ‘외적의 침입에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지도를 쓸데없이 만들었다’는 지적에 곤혹을 치뤘다. 지도의 활용은 국운을 가른다. 대동여지도가 나오기 훨씬 전, 조선이 삼정문란과 세도정치에 빠져 있던 18세기에 일본은 이미 정확한 세계지도를 그려내고 있었다. 근대화와 산업화 이전에 인식부터 깨어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지도로만 본다면 한일간의 격차는 오래 전부터 싹텄다. 지도는 시대를 반영함과 동시에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인식과 자각, 실증의 반복은 지식체계로 축장된다. 발전하고 싶다면 지도와 그 역사를 보라. 모든 자양분이 들어 있다. 입력시간 : 2007/08/17 16:29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