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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은 인간평가의 잣대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는 벤저민 프랭클린은 `신용`의 덕을 강조하는 데 고상한 관념적 표현을 피하고 “제때에 빌린 돈을 갚는 사람은 만인의 돈지갑의 주인이다”라는 금언을 전파했다. `신용에 영향을 주는 행위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이 자유시장 사회의 규범이다. 우리나라 교과서에는 신용의 덕은 들어 있지만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생활화하는 `신용`이 바로 자본임을 가르치지는 못했다. 금융신용제도는 무자본의 `신용`으로 기업을 할 수 있는 점에서 `신용주의` 제도임을 젊은 세대에게 몸으로 체득하게 하는 데 우리는 너무 게을렀다. 한국화폐 1만원권을 보자. 그것은 다만 종잇조각이며 유통되는 동안 더럽혀져서 감기로 콧물이 날 때에도 쓸모가 없다. 그러나 그 1만원권으로 시장이나 백화점에서 그 값에 상당하는 물건을 사는 데 거절당하지 않고 통용되면 그 종이는 어느덧 `현금가치`를 가진 것이 된다. 어떻게 그 종잇조각이 만원어치의 현금가치를 갖게 되는가. 그것은 `신용`에 의한 것이다. 지금 우리는 공기 속과 같은 신용사회 속에 살고 있지만 신용이 추락하면 공기가 없어 숨을 쉴 수 없게 되는 이치와 같다. 우리 한국의 외환위기는 과연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일시에 국제적 신용추락으로 우리나라 국부(國富)의 절반이 사라진 것이다. 김대중 정부가 외환위기에 대처하는 가운데 또 하나의 심각한 신용추락의 시민윤리적 위기를 남겨놓은 게 있다면 바로 신용카드로 인한 350만 신용불량자의 양산이다. 신용카드의 생명은 신용이다. 그런데 신용카드의 남발로 외환위기 이후 청년실업ㆍ고용문제에 `눈가리고 아웅`식의 대응을 한 실책이 드러난 것이다. 신용카드사도 투기적ㆍ보험적 심성으로 리스크 관리에 게을렀던 불찰로 인해 자유시장의 정도가 무엇인가에 대해 따끔한 교훈을 얻게 됐다. 대체로 신용카드에 의한 신용불량자를 400만명으로 추산한다면 그중에는 1,000만원이 아니라 1억원까지의 빚쟁이도 나와 신용카드형 자살자, 신용카드형 청소년 범죄가 범람하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신용창조가 곧 신용파괴가 된 느낌이다. 한때 신용카드산업의 폭주를 보면서 이제는 누구나 은행 담보 같은 것 없이 돈을 빼 쓸 수 있는 `금융낙원`이 됐다는 착각까지 들었다. 그 착각은 마치 빚 독촉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공돈같이, 어디서나 누구나 돈을 뽑을 수 있는 도깨비 금방망이같이 변형된 것으로 한국 신용카드의 허점을 만들어냈다. 한시적으로는 신용카드가 당장의 생계위협을 받는 경제적 약자들에게 숨통을 터준 임시변통의 효과가 있었음을 무시할 수는 없다. 또한 패자부활의 기회를 줘 손쉬운 융자혜택을 준 일면도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외환위기로 생계가 막막해진 일부 선의의 신용불량자들에 국한된 관점에서는 내수진작의 편법으로 응급의 위기회피 처방도 됐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 신용불량자 문제가 복지정책이나 저소득층에 대한 사회보장 등의 `사회적 안전망` 차원에서만 다뤄져야 하는가는 따져봐야 할 일이다. 신용카드산업이 넋 빠진 듯이 과당경쟁으로 카드세일을 남발한 데 대해 자기책임을 면제당할 수 있느냐도 고려해봐야 한다. 신용불량자 400만명의 사태에는 다만 개인생계에 대한 `워크아웃`제도나 그 빚을 탕감해주는 데서 생기는 `모럴 해저드` 등의 피상적 문제파악과 대책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보다 깊은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교도소의 수감자도 대통령 `특사`로 풀려났는데 신용불량자 `특사`는 왜 없느냐고 한다면 신용의 덕 자체가 위기에 빠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교육과 시민의식 속에 인물과 기업정책의 새로운 잣대로 신용평가 기준이 자리잡혀야 한다. 학력도 신용평가의 일부다. 학벌파괴를 하는 것은 좋으나 학력까지 파괴해서는 안된다.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 신용 있는 사람은 성공하고 신용이 추락하면 패가망신한다는 규범을 세워 `고신뢰 사회`의 지향에서 일탈되지 않는 신용불량자 구제의 현책이 강구돼야 한다. 담뱃갑에는 흡연의 폐해에 대한 경고가 있다. 신용카드마다 신용불량의 기준과 경고문을 넣어 신용카드 문화의 정착에 힘써야 할 것이다. `이 돈은 공돈이 아니라 당신의 목숨 같은 신용이다`라고. <신일철(고려대 명예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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