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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과도한 목표는 '행복주택' 망친다


'국민의 정부'출범 첫해인 1998년. 정부에는 '개발제한구역 제도개선협의회'라는 태스크포스(TF)가 구성됐다. 서울을 비롯한 14개 대도시 지역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중 사실상 기능을 상실한 곳을 해제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3년 후인 2001년 8월 제주 지역을 시작으로 전국 대도시권역의 그린벨트가 순차적으로 해제됐다.

그린벨트 해제는 1971년 첫 지정 이후 30년간 묶였던 해당 지역 주민들의 재산권 행사의 길을 터준 것 외에 정부가 주거복지 확대를 위해 대규모 가용토지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도 깔려 있었다. 그린벨트 해제 지역에 2012년까지 임대기간 30년짜리 국민임대주택을 100만가구 지어 저소득층의 주거안정을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이 계획을 위해 '국민임대주택 건설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됐고 주무부처인 건설교통부에는 '국민임대주택기획단'이라는 별도 조직까지 만들어졌다. 국민임대주택 공급은 정부의 주택 정책이 소유 중심에서 탈피해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복지 체제로 전환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의 핵심 주거공약사업이었던 '보금자리주택지구'는 기존의 '국민임대주택지구'를 확대ㆍ개편한 성격이 강했다. 정부는 당시 무분별하게 들어선 비닐하우스나 공장 등으로 기능을 상실한 그린벨트를 추가 해제해 이곳에 2018년까지 저렴한 가격의 보금자리주택 150만가구를 공급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가시적 성과 집착이 실패 자초

이를 위해 '보금자리주택건설 등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했고 서울 강남ㆍ서초 등 강남권에 대규모 보금자리주택지구를 지정해 시세의 절반 수준에 아파트를 분양했다. 사업이 본격화된 2009년부터 2012년까지 4년간 공급된 보금자리주택은 53만8,000가구다.

보금자리주택지구는 저렴한 그린벨트를 택지 공급원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국민임대주택지구와 유사하다. 실제로 정부는 보금자리주택 사업 과정에서 상당수 국민임대주택지구를 보금자리주택지구로 활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보금자리주택은 수요를 무시한 무리한 사업 추진과 '시세의 절반'수준의 분양가로 시장왜곡을 불러와 결국 실패한 정책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특히 6차에 걸친 무더기 지구 지정, 그리고 광명시흥지구 등 신도시급 보금자리지구의 사업 표류는 보금자리주택사업의 출구전략 마련마저 어렵게 만들고 있다.

보금자리주택 정책은 왜 실패했을까. 시장에서는 정부가 중장기 주거복지의 큰 틀을 짜기 보다는 임기 내 가시적 성과에 집착, 실적 위주의 정책 목표를 세움으로써 스스로 실패를 자초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보금자리주택의 공급 목표로 제시했던 150만가구는 주택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사회적 문제로까지 확대됐던 1980년대 말 당시 추진했던 200만가구 건립계획과 견줘 봐도 결코 만만치 않은 물량이다.



박근혜 정부는 폐기된 보금자리주택 대신 '행복주택'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주거복지 실험에 나서고 있다. 철도부지 등 방치된 유휴 국공유지 등을 활용해 직주근접형 임대주택을 지어 여기에 대학생ㆍ신혼부부 등 다양한 계층을 거주시키겠다는 것이 행복주택의 개념이다. 임기 내 공급목표는 20만가구로 보금자리주택과 비교하면 소박한 목표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도심 내 유휴지를 활용해 20만가구의 주택을 짓는 게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실제로 최근 정부가 발표한 7개 시범지구 중 3곳은 홍수 때 하천에서 역류하는 물을 담아두기 위해 조성한 유수지다. 3개의 유수지 행복주택지구는 이번 7개 시범지구 중 입지가 가장 뛰어난 곳이다. 반면 철도부지를 활용한 나머지 4개 지구는 객관적으로 따져도 기존 보금자리주택지구와 비교해 입지 차별화가 이뤄지지 않는다. 오류동지구만 해도 도심과는 거리가 한참 먼데다 주변에 천왕ㆍ항동ㆍ옥길 보금자리지구를 비롯해 크고 작은 택지지구가 몰려 있는 곳이다. 가장 공을 들였을 법한 시범지구의 면면을 보면 향후 추가 사업부지 선정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예측케 한다. 도심 유휴지의 물리적 한계를 감안하면 20만가구 공급이 무리라는 지적이 벌써부터 잇따르고 있는 것도 기우만은 아닐 것이다.

사업 타당성 잘 따져 추진해야

과도한 숫자로 목표가 제시되는 순간 이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시장원리나 사업타당성은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 웬만한 신도시 못지않은 규모의 땅을 보금자리지구로 지정해놓았지만 사업은커녕 보상조차 하지 못한 채 방치돼 있는 광명시흥지구가 대표적 사례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행복주택'이 임기 이후에도 성공한 정책으로 평가 받기 위한 해법은 의외로 간단해 보인다. '20만가구'라는 목표만 포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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