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얼마나 오래 살까. 창업하고서 3년 안에 절반이 문을 닫는다는 영세 자영업은 그렇다 치더라도 대기업이라면 장수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나라 대기업의 평균 수명은 29년 남짓이라는 조사 결과가 있다. 세계 굴지의 다국적 기업도 40년에서 50년 사이에 불과하다. 맥킨지의 분석에 따르면 일반적인 미국 대기업의 경우에는 창업에서 소멸까지 15년밖에 안 걸린다. 조사 기준이나 국가ㆍ산업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단명인 것은 분명하다.
반대로 우리나라를 포함한 선진국의 인간 평균 수명은 80년 내외로 대기업보다 서너 배 길다. 사람은 날로 고령화하는 반면 기업은 날로 단명화되는 것이 현대 산업사회의 아이러니다.
인간의 장수 위험을 재무적으로 정의하면 노후를 위해 장만해놓은 돈보다 오래 살게 될 가능성이다. 그런데 기업의 단명화는 이 장수 위험을 더욱 키우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믿을 만하다는 대기업에 노후자금을 투자했는데 그 기업이 일찍 죽어버린다면 아직도 한참이나 되는 투자자의 여생은 재앙 그 자체일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동양그룹의 몰락은 이 그룹이 한때나마 재계 순위 5위였다는 과거 영화와 대비되면서 많은 놀라움을 주고 있다. 와중에 소중한 노후자금을 이 그룹의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했다가 청천벽력을 맞은 중장년층의 안타까운 사연이 한둘이 아니다. 대기업의 높아진 사망 위험이 투자자의 장수 위험을 현실화시킨 것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사례는 반복될 것이다. 그렇다면 재벌 불패, 대마불사의 미망에서 깨어나 은퇴자금을 잘 지킬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첫째, 수익률이 높으면 그만큼 위험이 깔려 있다는 투자의 제1원칙을 되새겨 고수익자산은 그것이 대기업이 발행한 것이라 해도 전체 자산의 일부에 한정해서 투자해야 한다.
둘째, 기업의 투자 위험은 일반인이 평가하기가 어렵고 시시각각 달라지므로 이들 자산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분산투자하는 간접상품을 활용하는 것이 낫다.
셋째, 현재 우량기업이라는 이유로 사서 묻어두는, 소위 맹목적 매수 보유 전략은 지양해야 한다. 기업의 현재를 맹신하다가는 평생 서너 번의 기업 부도를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너무 잦은 매매로 낭패를 보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나 몰라라 내버려두는 것도 스스로에게 매우 무책임한 일이다.
투자 위험은 무작정 회피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합리적으로 관리해야 할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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