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0년대는 경제학사에서 혁명기로 불린다. 배가 부르면 산해진미에도 손이 안 가는 것처럼 ‘소비단위가 일정 한도를 넘어서면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한계효용의 법칙이 연달아 발표됐기 때문이다. 1871년 오스트리아의 카를 멩거(Carl Menger)가 ‘국민경제학 원리’, 영국인 제번스가 ‘경제학 이론’에서 한계효용 개념을 발표했다. 1874년에는 프랑스의 레옹 발라가 ‘순수경제학 요론’에서 같은 이론을 내놓았다. 경제학이 생산과 소비의 학문으로 이론적 무장을 한 것도 한계혁명 이후다. 한계혁명의 첫 주자인 멩거는 법학을 전공한 기자 출신. 1840년 2월28일 오스트리아 갈리치아(요즘은 폴란드)에서 하급 귀족 출신인 변호사와 부유한 상인의 딸 사이에서 태어나 빈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했다. 법조계 투신을 원했던 집안의 희망과 달리 신문사에 입사한 멩거는 금융시장을 취재하면서 수요공급과 가격형성이 교과서와 다르다는 점을 간파하고 한계효용론을 담은 ‘국민경제학 원리’를 출간했다. 책은 그에게 대학교수직과 경제학과장, 황태자의 개인교사직을 안겼다. 종신 상원의원직도 꿰찼다. 한 살 터울의 동생 안톤도 유명하다. 빈대학 총장까지 오른 안톤은 처음으로 노동권을 노동자의 생존을 위한 기본권으로 해석한 법학자로 기억되고 있다. 한계혁명의 주인공 중에서도 멩거는 특별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뵘바베르크ㆍ비제 등 특출한 후배들이 한계효용론을 발전시킨 덕에 미제스ㆍ슘페터ㆍ하이에크까지 내려오는 오스트리아학파(빈경제학파)의 창시자로 평가받고 있다. ‘사회과학’이라는 용어를 만든 사람도 맹거다. ‘경제유기체론(1883년)’에서 사회적 제도와 개인과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경제학을 사회과학이라고 부른 게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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