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조사에서 우리 기업들은 2006년과 2007년 세금 납부에 연평균 290시간씩 투입한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이 기간 세금 규제에 대한 세계순위는 94위에서 111위로 추락했다. 우리가 팔짱을 끼고 있는 사이 다른 나라들은 기업이 세금납부를 손쉽게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했다는 의미다. 물론 그동안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의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총 규제수가 지난 98년 8월 1만717건에서 올 1월 8,083건으로 줄었다. 아울러 폐업ㆍ융자ㆍ교역절차ㆍ 허가취득 등의 분야에서는 다른 국가보다 규제의 강도가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경쟁국들이 강력한 규제완화 정책을 추진함에 따라 우리의 규제정도가 상대적으로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민간경제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창업, 고용ㆍ해고, 투자자 보호 등 주요 기업활동 파트에서 우리의 규제가 상대적으로 강한 대목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며 “글로벌 경제 시스템 아래에서는 (우리 규제가) 얼마나 감소했는지 다른 국가와 비교했을 때 밀리지는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쟁국들 규제완화 속도 낸다=한국의 규제순위는 2004~2007년 23~24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기간 동안 ‘덩어리 규제완화’ 등 수많은 정책이 나왔지만 순위에는 변함이 없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답보를 면치 못하고 있는 동안 선진 주요 국가와 아시아 경쟁국은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일본은 순위가 2004년 13위에서 2006년 12위, 2007년에는 11위로 올라섰다. 싱가포르는 2007년에 1위로 등극했다. 말레이시아는 2004년 27위에서 2005년 31위로 떨어졌으나 2006년과 2007년에는 25위로 우리를 바짝 뒤쫓고 있다. 특히 중국은 창업, 융자여건, 투자자 보호, 교역절차 등과 관련된 규제 수준의 완화에서 2007년에는 상위 10개국에 선정되기로 했다. ◇창업 등 5개 분야는 규제 후진국=보고서는 특히 창업, 고용 및 해고, 소유권 등기, 투자자 보호, 납세 등 5개 항목에서 상대적으로 강한 규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이 분야에서 규제를 그대로 유지하거나 소폭 완화하는 데 비해 경쟁국들은 적극적으로 규제를 풀고 있다는 의미다. 우선 창업에 필요한 절차(횟수) 부문에서 2006년 12회, 2007년 12회를 기록했다. 반면 순위는 126위에서 142위로 20여단계나 추락했다. 창업에 소요되는 시간도 22일로 변화가 없지만 순위는 38위에서 47위로 주저앉았다. 고용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고용 난이도 지수, 근무시간 유연성, 해고 난이도 지수, 고용 경직성 지수 등에서 규제는 2006년이나 2007년에나 그대로였다. 하지만 경쟁국들이 규제를 풀면서 한국의 순위는 전 분야에서 동반 하락했다. 특히 급여 대비 해고비용 항목에서는 순위가 2006년에는 138위였으나 2007년에는 156위로 사실상 밑바닥으로 주저앉았다. 투자자 보호 관련 항목도 예외는 아니다. 거래투명성 규제는 7건으로 2006ㆍ2007년 그대로다. 순위는 128위에서 146위로 떨어졌다. 주주 소송과 관련된 규제도 7건으로 변함이 없으나 순위는 124위에서 144위로 직강하했다. 기업의 소유권 등기 관련 항목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적극적인 규제완화 필요=폐업ㆍ융자여건ㆍ허가취득 등 일부 분야에서는 한국의 규제완화 속도는 다른 국가보다 앞서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봤을 때 경쟁국들이 앞서나가면서 정부의 규제완화는 오히려 성과가 떨어지고 있다. 정부가 규제완화에 나서고 있다고 하지만 정작 기업들이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김종호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이번 보고서는 규제 개혁 정책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도록 시사점을 제공하기 위해 작성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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