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을사조약체결 1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한ㆍ일 양국이 지난 아픈 과거를 각자의 입장에서 다시 한번 반성하고, 21세기 동북아시대 개막과 동아시아 경제공동체 구현을 위한 초석을 다지는 원년이 되기 바랍니다.” 재계의 대표적인 일본통(通)인 현명관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은 “이제 우리 국민들도 일본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벗고 당당하게 자신감을 가지고 일본과의 신뢰를 증진시키는 노력을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현 부회장은 또 “한ㆍ일 자유무역협정(FTA)은 아시아 경제활력의 회복을 위해 매우 시급한 현안이므로 양국간 FTA협상을 조속히 재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만 “FTA체결로 일본에 열위에 있는 국내 부품소재산업이 붕괴될 위험이 있는 만큼, 철저한 보호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ㆍ일 수교 40주년을 맞았습니다. 그 의미와 양국의 발전방향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가깝고도 먼 나라로 여겨지는 한ㆍ일관계는 국교정상화 이후 정치 경제적으로는 물론 사회 문화 교류 면에서도 비약적으로 확대되어 왔습니다. 경제협력 측면에서는 한ㆍ일간 무역역조의 심화라든가 최근 감소추세를 보이는 일본의 대한(對韓) 투자 등을 우려하는 시각도 나오고 있지만 이러한 불균형적 경제관계의 주요인을 모두 일본 측에 돌릴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노사관계 및 투자환경 개선이라든지 그리고 특히, 부품ㆍ소재산업 기반 강화를 통한 경제체질 강화를 위한 우리 쪽의 노력 부족이 있었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앞으로도 한ㆍ일간은 일의대수(一依帶水; 한 줄기 띠와 같이 좁은 강물이나 바닷물)의 관계로서 세계 속에서 차지하는 양국의 경제적 비중이나 위치를 고려할 때 지도적 위치에서 양국관계의 발전은 물론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열어가는 데 있어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미래의 동반자 관계를 공고히 해나가야 할 것으로 봅니다. -한ㆍ일 FTA 체결에 관해 논란이 많습니다. 국내 업체들은 반대 의견이 많은데, 한ㆍ일 FTA 체결에 대해 입장을 말씀해 주시죠. ▲재계에서 일본과의 FTA에 반대하고 있다는 일부의 오해가 있으나 반대라는 표현은 부적절합니다. 한국 경제계는 동북아시아의 핵심국가인 한국과 일본의 FTA는 동북아는 물론 아시아 경제 전반에 있어 산업협력의 기본틀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며, 이러한 점에서 한ㆍ일 FTA는 아시아 경제활력 회복을 위해 매우 시급한 현안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착상태에 있는 양국간 FTA협상이 조속히 재개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한국 입장에서 한ㆍ일 FTA 체결 이후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 무엇입니까. ▲우선 일본이나 한국 기업들이 양국간 협력관계를 보는 시각이 너무 좁다는 점이 우려됩니다. 특히 일본은 부품·소재 분야에서 세계 1위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우리 주종 수출품목의 상당수가 일본의 부품ㆍ소재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합니다. 양국간에 충분한 논의와 준비없이 한ㆍ일FTA가 타결될 경우 아직 경쟁열위에 있는 한국의 부품소재 산업분야의 붕괴가 우려됩니다. 다른 한 가지는 한국 경제에 관한 부분인데, 과연 우리의 비즈니스 환경이 개방화라는 큰 흐름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FTA를 상품교역의 자유화라는 측면에서 이해하고 있지만, 상품경쟁력의 원인을 따라가다 보면 그 이면에는 기업간, 그리고 조직운영시스템의 효율성에서 차이를 확인할 수 있으며, 나아가 국가차원에서 기업관련 제도, 교육제도 그리고 사회시스템이 보다 효율적인가 하는 문제로 귀착됩니다. FTA는 개방화를 향한 한 스텝(발걸음)에 불과하며 결과 그 자체는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멕시코가 여러 나라와 FTA를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부작용만 커져 FTA 모라토리움 (중단)을 선언한 것은 새겨볼 만한 대목입니다. 한ㆍ일FTA는 물론이고 어느 국가와의 FTA도 궁극적으로 기업구조조정을 포함하여 경제, 사회제도 전반적인 혁신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결국 절반의 성공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아시아에서 중국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한 방편으로 한ㆍ일 경제협력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하는데, 아시아 그리고 세계에서 한ㆍ일협력의 역할과 그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지구 지구촌 곳곳에서 지역경제통합을 위한 노력과 결실이 보여지고 있는 가운데 유일하게 변변한 지역협력기구 하나 만들지 못한 곳이 동아시아지역입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한ㆍ일 두 나라는 물론 중국도 늦게나마 지역협력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경제공동체 구성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EU와 NAFTA 등 이미 형성된 배타적 지역경제블럭에 효과적으로 경쟁할 수 있도록 동아시아 경제공동체 실현을 위한 한ㆍ중ㆍ일간 협력 강화가 더 절실한 과제라고 봅니다. 향후 한ㆍ일간의 협력은 중국을 동반한 협력관계가 될 것見? 이는 곧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협력으로 귀결될 것입니다. 동북아의 경제규모와 비중을 고려할 때 이 지역의 안정과 번영은 곧 세계의 경제발전과 평화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동아시아지역 경제의 리더인 일본이 선도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과 분위기를 한국과 함께 적극적으로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유럽이 단일 통화에 의한 단일 경제권을 형성한 것처럼 아시아 국가도 역내 경제권의 통합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아울러 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공동 통화방어의 필요성이 제기된 데 이어 최근에도 한ㆍ중ㆍ일 정상간에 비슷한 논의가 있던 것으로 압니다. ▲유럽의 단일 통화권 형성은 독일, 프랑스 등 경제적 리더국가가 자국 통화를 포기하는 등 경제통합을 위한 중심적 역할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통화 통합, 경제 통합이 가능하려면 역내 국가간 물적ㆍ인적 교류가 활발해야 하고, 역내 금융권의 국가간 거래가 활발하고 물량도 커야 하며, 역내국가의 경제시스템이 동일해야 합니다. 아시아지역, 특히 한ㆍ중ㆍ일간에는 위의 조건들이 상당부분 충족하고 있으며 따라서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지금부터 협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울러 최근 동아시아에서 경제교류가 증대되고 FTA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 만큼 향후 통화 통합에 대한 논의도 점차 확대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시아 전체의 경제발전을 위해 중립적인 입장에서 장기적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연구기구가 없다는 점이 아쉬운 점입니다. 이를 위해 중립적 위치에 있는 한국이 아시아 통화통합, 경제통합을 위한 연구소 설립 등을 구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 경제가 지난해 살아나는 것처럼 보이다가 하반기 들어 지표가 나쁘게 나왔습니다. 일본 경제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버블붕괴 후 일본 경제가 과거 몇 차례 침체와 호조를 반복했던 점에 비추어 볼 때 아직 확실히 일본 경제를 평가하기는 이르지만 주목되는 점은 일본은 우리와 달리 수출증가가 민간설비투자 확대로 이어지고, 개인소득ㆍ고용사정이 나아지고, 이것이 다시 소비증가로 연결되는 경제의 선순환구조가 복원되었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일본 경제가 상반기의 호조에 비해 하반기 들어 다소 낮게 나타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달러화 약세, 고유가 등으로 어느 정도 예견되었던 것입니다. 2005년에 이후 일본 경제는 대체로 2~3%대이상의 성장을 지속해 나갈 것으로 봅니다. 중요한 것은 팽배해 있던 경제주체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사라지고 이제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는 점이 우리와 다른 현상입니다. -한국 경제가 지난해 극심한 내수침체로 위기국면을 맞고 있습니다. 올해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올해 우리 경제는 3%후반~4%초반대의 성장을 보일 것으로 전망됩니다. 가계부채, 신용불량자 문제 등 소비위축을 가져온 구조적인 원인들이 해결되지 않고 있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제조업과 서비스업간 투자양극화도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수출도 세계경제 둔화, 원화강세 등 불안요인이 산재하고 있는 데다 지난해 호조에 대한 지표상 반락으로 둔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경기는 하반기 들어 다소 나아질 것으로 보이지만 본격적인 경기회복의 모멘텀을 찾기 어려워 지표상 완만한 반등에 그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성장률이 크게 하락하고,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일본형 장기불황과 저성장 고착화의 가능성이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최근 일본에서 불고 있는 욘사마 열풍이 한일 경제협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욘사마 열풍은 일본의 사회문화 분야에서의 다양화ㆍ다변화가 진행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일본이 사회문화 분야에서 만큼은 종래의 보수화 및 우경화 경향에서 많이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즉 문화 아이덴티티, 소수민족에 대한 인식 등에서는 종래의 획일성에서 벗어나, 상당 정도 다양화와 다양성에 대한 존중현상이 발견되고 있어 개방된 새로운 일본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인 현상입니다. 우리는 ‘욘사마 열풍’이 세계각국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날 수 있도록 우리 문화 및 전통에 대한 컨텐츠 개발 등에 노력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북한이 핵무기로 동아시아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한국ㆍ일본을 비롯, 아시아 국가들과의 경제협력도 원하고 있습니다. 이 두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제시해 주십시오. ▲북핵문제 해결에는 정치적인 면과 경제적인 면 두 가지 방법을 병행하여 풀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정치적으로 북핵문제는 6자회담을 기본으로 한 다자간 틀 안에서 ‘대화’와 ‘타협’에 의해 풀어야 합니다. 경제적으로는 북한의 개혁ㆍ개방을 유도하는 차원에서 남북경제협력을 추진해야 합니다. 최근 개성공단에서는 냅습막?우리 입주기업의 시제품이 생산되어 남한에 판매되기 시작한 것은 바람직한 일로 점차 남북경협의 결실이 확대되어 나갈 것으로 믿습니다. -올해는 한ㆍ일 수교 40주년임과 동시에 을사조약 100주년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선 과거사 논란이 끊이지 않는 반면, 일본에선 총리가 신사를 참배하는가 하면 전쟁피해자에 대한 보상에도 소극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소회를 말해주십시오. 그리고 한일 경제협력과 21세기 공존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현재의 한ㆍ일관계는 수교 이후 가장 좋은 시기입니다. 이러한 때에 양국 국민이 역사의 진실을 알려는 노력과 함께 진실을 용기있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야 합니다. 이러한 시점에 일본의 일부 지식인들이 역사의 상처를 자극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자제해야 할 것입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세계경제의 추세는 경제통합과 지역협력체를 바탕으로 경제 및 산업발전을 추구해 나가고 있습니다. 유일하게 지역협력체를 가지고 있지 못한 동북아는 미래의 공동 발전과 번영을 위해서 같이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될 입장입니다. 이런 점에서 한일 두 나라는 이제까지의 신뢰와 호혜정신을 바탕으로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에서 협력의 모범을 보여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2005년이 을사조약체결 100주년으로서 양국은 지난 아픈 과거를 각자의 입장에서 다시 한번 반성하는 한해가 되기를 바라는 동시에 한ㆍ일 국교정상화 40주년을 맞는 ‘한ㆍ일 우정의 해’로서 지난 2002 한ㆍ일월드컵 개최로 다져진 양국간 선린우호관계가 더욱 뿌리 깊게 내려 21세기 동북아시대 개막과 동아시아 경제공동체 구현을 위한 초석을 다지는 원년이 되기 바랍니다. 우리 국민들은 이제는 일본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피해를 받았다든가, 지배받았다는 열등감을 극복하여 당당하게 자신감을 가지고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양국간 신뢰를 증진시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약력 ▦1941년 제주 출생 ▦1963년 서울대학교 법학과 졸업 ▦1968년 감사원 부감사관 ▦1978년 전주제지㈜총무부장 ▦1993년 삼성그룹 비서실 비서실장 ▦1996년 삼성물산(주) 총괄대표이사 부회장 ▦2000년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2001년 삼성물산(주) 대표이사 회장 ▦2002년 삼성 일본담당 회장 ▦2003년 [현]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