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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이 모(28)씨는 원룸 임대차 계약 과정에서 집주인으로부터 황당한 요구를 들었다. 월세 55만원에 관리비 5만원으로 정해진 거래를 계약서상에선 정반대로 표기하자고 했던 것. 당장 새로운 월셋집을 구하는 것이 급했던 터라 결국 월세 5만원에 관리비 55만원으로 계약을 마칠 수밖에 없었다. 이 씨는 "당시에는 결국 같은 금액을 낸다고 생각해 계약을 진행했지만 집주인이 소득세를 피하기 위한 꼼수에 이용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원룸의 '고무줄 관리비' 책정이 임대인들의 소득세를 줄이기 위한 편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원룸 관리비에 관한 규정이 없다 보니 이를 늘리는 방식으로 소득세를 피하는 것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원룸을 계약할 때 월세와 관리비를 미세조정하는 것을 넘어 아예 계약서에 두 부분의 금액을 반대로 표기하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다. 현재 연간 월세 소득이 2,000만원(1주택자는 9억원 초과 주택 기준)을 넘을 경우 소득세 부과 대상이 되는 반면 관리비는 비용 처리되기 때문에 소득으로 간주 되지 않아서다.
집주인들이 원룸 월세를 이처럼 고무줄처럼 늘렸다 줄였다 할 수 있는 것은 현행 법의 맹점 때문이다.
아파트의 경우 주택법을 적용 받는다. 아파트의 경우 의무관리 대상에 포함돼 장기수선충당금을 비롯해 인건비, 공과금 등 47종의 항목을 공개해야 한다.
반면 원룸은 주택법이 아닌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는다. 의무관리 대상도 아니어서 공개의무가 없다. 또 관리비 부과 기준에 대한 규정도 전무 한 실정이다. 한 업체 조사에 의하면 원룸의 3.3㎡당 관리비는 1만 876원으로 아파트(5,613원)의 약 2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포구 K 공인 관계자는 "임대수입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본인 소득이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방법 중 하나가 관리비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원룸과 마찬가지로 집합건물법에 속한 상가 점포나 사무실 역시 임대차 계약서 작성 시 월세를 관리비보다 더 낮은 금액으로 작성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문제로 인해 이미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집합건물관리정보시스템을 구축하고 지방자치단체에 감독권한을 부여하는 내용 등을 담은 '집합건물법' 개정안을 지난 5월 발의 했지만 아직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도 지난 3월 원룸 관리비 부과기준을 제도화하는 방안을 국토교통부와 협의해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재까지 감감무소식이다. /권경원기자 naher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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