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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진정한 영웅' 소방관을 위한 기도


"제가 업무의 부름을 받을 때에는 신이시여 아무리 강렬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제게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감싸 안을 수 있게 하시고 공포에 떠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소방관의 기도(Firemen's Prayer)'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지난 2001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화재 사고 당시 순직한 한 소방관의 책상에 걸려 있던 이 시는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큰 감동을 줬다. 그 후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한 장면에서 내레이션으로 소개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다시 보고 또 듣고 싶지만 현실과 맞닿아서는 회자되지 않기를 바라는 이 시가 지난달 3일 서해대교 화재 진압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한 소방관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또 한 번 많은 이를 울렸다.

화재 발생 신고를 받자마자 현장으로 달려간 고(故) 이병곤(54·지방소방령) 소방관. 불은 높은 곳에서 났고 바람은 거셌다. 눈보라까지 심해 소방 헬기가 뜰 수 없었다. 고가 사다리도 쓸 수 없었다. 소방관들은 장비를 짊어지고 100m 높이의 서해대교 주탑 난간으로 올라가 여러 개의 호스를 이어 붙인 소방 호스를 끌어올려 불길을 잡았다. 그 과정에 케이블이 끊어져 아래로 떨어졌고 이 소방관이 쓰러졌다. 25년 동안 2,000여명의 생명을 구한 '베테랑 소방관'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이 세상의 모든 죽음을 슬픔과 떼어내 생각할 수 없지만 소방관들의 죽음에 유독 많은 사람이 특별한 감회를 갖는 것은 자신을 희생해 남의 생명을 구해야만 하는 운명적인 직업적 특성 때문이다. 남들은 불길을 피해 뛰쳐나오는데 오히려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가야 하는 소방관들의 헌신성은 언제나 사람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도 남는다. 사람들이 그들을 진정한 '영웅'이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은 불리는 이름과 거리가 멀다. 2013년 국정감사에서 소방방재청이 제출한 '16개 시도별 취사차 및 폐쇄 텐트 보유 현황' 자료에 따르면 4만여명의 소방관의 식사와 휴식을 책임질 취사차와 폐쇄 텐트는 각각 5대와 127동에 불과하다.

인력 부족과 장비 노후화 등 업무 환경은 더 열악하다. '살인적'이라는 표현 말고는 답이 없는 하루 24시간 맞교대에다 여전히 노후화된 장비를 들고 불 속으로 뛰어들고 있다.



현장에서 부상당한 소방관 10명 중 8명이 자비로 치료를 하고 10명 중 4명은 개인적으로 안전 장구를 구입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는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이런 실태가 알려지자 여야는 특수소방장비와 소방 헬기 보강에 각각 33억원·72억원 증액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 소방관의 순직 소식이 들려온 날 이 증액안들은 새해 예산에서 모두 빠졌다. 그리고 여야 핵심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은 정부안보다 오히려 더 늘었다.

국민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화마와 사투를 벌이는 소방관들에게 밑도 끝도 없는 희생과 인내를 강요하는 현실. 영웅이라는 칭호에 걸맞은 대우를 받고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해 이제는 우리가 그들을 위한 기도를 해야 할 차례가 아닐까.

타인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숭고한 일을 천직으로 여겼던 이 소방관. 다시 한 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김경훈 디지털미디어부 차장 styxx@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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