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소공인 살리자] '제조업 풀뿌리' 꺾이면 연관 산업 동맥경화… 생태계 복원 급하다

1부.기로에 선 소공인 <1> 슬픈 자화상

시장 변했는데 옛날식 고집… 제살깎기 악순환

"힘들고 돈 못버는 일자리"… 젊은층 취업 꺼려

부품업체들 시제품 만들어줄 곳 못찾아 발동동

사업 전념할 수 있게 판로·인력 지원책 마련을

소공인 기획19
수은주가 영하권에 머물던 21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소공인집적지 골목에서 소공인들이 주문 받은 작업을 소화하느라 분주하게 일손을 놀리고 있다. /권욱기자

김종은(58) 제이앤이 대표는 열여섯 살부터 43년 동안 가방만 보고 살아왔다. 지난 1991년 국내에서 일감이 끊기자 선배들을 따라 무작정 일본으로 건너갔다. 비자가 15일짜리밖에 나오지 않아 불법체류를 감수하면서도 일본에서 17년 동안 가방을 만들었다. 일본 사람들은 김 대표를 보는 눈빛부터 달랐다고 한다. 불법체류 신분인데도 일본의 종합패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들은 김 대표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줬다. 김씨의 수입은 한국에 있을 때보다 세 배나 많았다. 10년 전 비자 문제로 고국으로 들어와 서울 중랑역 근처 지하공장에서 가방을 만드는 그는 지금도 일본에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굴뚝같다. 김 대표는 "우리 세대는 이제 길어봐야 10년이고 아마도 우리가 (가방 기술장인의) 마지막 주자일 것"이라며 "가방공인들이 다 없어지면 대기업들은 해외로 가서 가방을 만들겠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결국 중국·동남아에서 만든 질 낮은 가방을 비싼 값에 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도 업체에 100만~200만원씩 돈을 지원해주는 것보다는 제조장인들이 물건을 잘 팔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해 사회적 인식을 높이는 일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21일 서울경제신문이 입수한 중소기업청 '2015년 전국 도시형 소공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소공인의 대부분은 미래에 대해 어두운 전망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국 6,000개 사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14.7%만이 소공인의 전망이 희망적이라고 대답했다. '보통(61.2%)'이거나 '절망적(24.2%)'라고 답한 응답자가 85.4%에 달했다. 이는 직전 조사인 2012년 소공인 실태조사에서 희망적으로 전망한 응답자(21.7%)와 비교하면 7%포인트나 떨어진 것이다. 이렇듯 우울한 전망 탓에 사업을 키우려는 업체(17.2%)보다는 회사 규모를 줄이거나(6.51%), 폐업하겠다(2.67%)는 업체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생계를 위해 현상유지(73.05%)를 한다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이들이 호소하는 경영 애로는 자금부족(33.97%), 판매처 부족(32.98%), 인력수급 부족(9.43%), 작업환경 열악(3.67%) 등으로 나타났다. 물건을 팔 곳이 없이 돈이 흐르지 않고, 돈이 없으니 일할 사람을 구할 수 없는 '악순환의 고리'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소공인 생태계가 무너지게 된 가장 핵심적인 원인이 인프라 부족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기술 노하우를 갖고 있는 소공인들이 제조에 전념할 수 있도록 판로와 인력확보 등에 대한 지원 시스템이 구축돼야 하지만 국내에서 소공인을 위한 정책은 금융지원에 그치고 있다. 소공인특화지원센터가 2013년부터 설치돼 현재 전국적으로 24개가 운영되면서 작업환경 개선 지원이 일부 이뤄지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박홍석 소공인학회 회장은 "시장에서 잘 팔리는 제품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는데 소공인들은 정보부족 등으로 인해 옛날식 방식으로 '제살깎기' 경쟁을 하고 있는 형편"이라며 "소공인들이 제조에만 집중해도 사업이 굴러갈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해주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제조 강국 독일의 경우 직접적 금융지원은 하지 않는 대신 인프라 구축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소공인이나 중소기업에 직접적인 금융지원도, 세제혜택도 없다. 대신 기업들이 제조만 잘해도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독일의 대표 제조기업이 밀집된 헤센주(州)정부에서 해외 투자를 담당하는 안드레아스 담러씨는 "회사 설립 초기에 일부 자금을 지원해주는 것은 회사가 성장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기업에 무조건 자금을 퍼주는 대신 성장을 하려는 의지가 있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해외 수출이나 전시회 등 판로를 개척할 수 있게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고 독일 특유의 일·학습병행제인 '듀알레 시스템'을 통해 고급인력이 꾸준히 유입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국내의 경우 사람을 구하지 못해 수십 년 축적된 기술이 사장될 위기에 처해 있다. 소공인은 3D 업종이라는 낡은 인식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다 학력 인플레이션으로 일자리 미스매치가 발생하면서 특성화고등학교를 졸업해도 제조업에 들어오지 않으려는 풍토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기술만 보고 살아온 소공인의 폐쇄성이 동네 공장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장애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뼈아픈 지적도 나온다.

이처럼 소공인 생태계가 생기를 잃어가면서 이미 국내 제조업체들은 시제품을 만들거나 특수부품을 제작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남윤형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 경제 패러다임이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이동하고는 있지만 경제체력을 튼튼하게 하려면 강한 제조업이 뒷받침돼야 한다"면서 "소공인 생태계가 위축되면 국내 제조산업 전반의 밸류체인이 끊어지는 것은 물론 중장기적으로는 핵심 기술개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만큼 동네 공장 재생을 위한 다양한 정책과 사회적 관심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스바덴(독일)=강광우기자 pressk@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