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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논단] 불 꺼지지 않는 연구소서 '희망 밝히는 연구소'로

신성장동력 절실한 대한민국號… 창의력 중심 패러다임 전환 필요

미래 글로벌 트렌드 선도 발굴 등 과학기술계 시대적 소명 다해야


독특한 시각으로 강대국의 흥망성쇠 역사를 분석하는 것으로 유명한 에이미 추아 예일대 교수는 저서 '트리플 패키지'에서 세계를 주도하는 국가의 세 가지 유전자로 국민의 자긍심, 노력과 인내,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를 꼽은 바 있다. 지난 1961년 1인당 국민소득 82달러의 세계 최빈국에서 반세기 만에 유례없는 성장을 거둔 대한민국의 성공 DNA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세계 속 대한민국이 있게 된 데는 우리 국민의 가슴속에 살아 있는 역사와 민족에 대한 자긍심, 다음 세대에게는 더 나은 삶을 살게 하겠다는 의지, 그리고 반세기 전 뿌린 과학기술의 씨앗이 결정적이지 않았을까.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설립과 제2차 과학기술진흥 5개년 계획이 착수되고 1967년 과학기술처가 출범하면서 대한민국 과학기술 반세기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970년대 대덕연구단지에 전문 출연연구기관 설립, 특정연구기관육성법 등 관련 입법의 추진과 함께 종합제철·중화학·자동차공업 등에 대한 육성계획이 수립·이행되면서 본격적인 과학기술시대가 펼쳐졌다. 이렇게 시작된 과학기술이 토대가 돼 영국 등 서방 선진국이 200여년에 걸쳐 발전한 과정을 한국은 50년 만에 성취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50여년간 숨 가쁘게 기적을 만들어온 대한민국은 현재 가파른 숨을 몰아쉬고 있다. 청년실업률 증가, 사회 양극화 심화, 급격한 고령사회로의 진입 등은 우리 경제 사회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으며 그동안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주력 산업이 처한 어려움은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를 더욱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대한민국호(號)가 당면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50여년 전과 마찬가지로 과학기술이 다시 앞장서 뛰어야 한다. 이제는 진부하게 들릴 정도인 추격형 R&D에서 선도형 R&D로의 전환,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연구체계 및 문화확산, 그리고 미래사회 준비를 위한 미지의 연구 분야에 대한 도전 등은 이제 더 이상 늦출 수 있는 사안들이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 50여년간 우리 몸에 입혀져 있는 제도·문화·방식을 벗어던지고 이 시대에 걸맞은 것으로 고쳐 입어야 한다. 결국 우리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하지 못하면 지난 50여년의 기적은 오히려 미래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패러다임의 요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상상력에 기반한 창의성이다. 우리 인류의 조상인 호모사피엔스는 동시대에 공존한 네안데르탈인·호모에렉투스 등에 비해 체격이 작고 근력이 약했음에도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생존의 원천은 상상력이었다. 호모사피엔스의 상상력은 개체 간 소통을 활발하게 해 지식을 효율적으로 집적할 수 있었고 집단생활에서 규율 및 제도를 정착시켜 세력 확장을 위한 힘을 키울 수 있었다. 인류사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온 상상력, 더 나아가 이를 실현하는 창의성은 미래 과학기술 패러다임의 중심이다.

50년 전 설립된 KIST는 온 국민의 여망이 담긴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였다. 우리의 선배들은 어떻게든 빨리 선진기술을 배워 우리 기업들에 전수하기 위해 밤잠을 줄여가며 연구에 매진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가 밑거름이 돼 우리 기업들은 세계에서 경쟁할 수 있었다. 이제 KIST를 비롯한 우리 과학기술계는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를 넘어 '미래 희망을 밝히는 연구소'로 거듭나야 한다. 미래를 밝혀나갈 원동력은 바로 상상력에 기반한 창의성과 열정, 그리고 미래를 향한 직관에 있다. 다음 반세기에 펼쳐질 미래 글로벌 트렌드를 개척·주도해나가는 것이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길이자 다음 세대에게 희망을 밝히는 길이다. 이를 통해 지난 반세기의 기적을 다음 반세기로 이어가는 것이 우리 과학기술계에 주어진 시대적 소명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병권 KIST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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