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박현정의 진실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




1년전 쯤 논란의 중심에 섰던 그리고 지금 반전의 주인공이 된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를 만난 적이 있다. 대가 센 칼럼을 쓰고 나서 우연한 조우(遭遇)였다. 그 당시 여론은 박 전 대표에 대한 뭇매와 차가운 시선 일색이었다. 나도 그에게 다소 강경한 입장을 취했었다. 그러나 박 전 대표과 서울시향, 그리고 정명훈 전 감독 사이에 있었던 문화계 및 여러 분야의 복수의 이해관계자들을 접하다 보니, 새로운 ‘구조’가 보였다.

박 전 대표에 대해 최근 들어 잘 알게 되었다는 어느 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서울시향 사건은 단순히 도덕적 해이 문제가 아니다. 시스템 경영과 과감한 혁신을 지향하는 기업인과 문화계 특유의 ‘암묵지’ 지향 행정과 연대 의식 간 대결이다. 전형적인 혁신 저항 현상이다.” 그 학자는 경영학을 오랫동안 공부한 사람이지만 음악인들의 생리를 잘 아는 사람 중 하나다. 예술경영 강의를 하기도 했다. 나는 궁금증이 생겼다. 수사기관이나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진위 여부 논란이 아니라, 박 대표의 스타일과 서울시향 직원, 그리고 음악계의 입장이 왜 충돌할 수밖에 없는지. 내 질문에 그는 이런 의견을 밝혔다. “우리나라 음악계는 신뢰 기반 자본주의 시스템이 아니다. 전형적인 약탈경제다. ‘선생님’들의 권위적인 지배와 그들의 네트워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제자들의 굴종적 관계로 묶여져 있다. 나중에는 스톡홀름 증후군처럼 유착 관계가 되어 피해자가 가해자를 보호하고 나선다. 미국이나 유럽의 음악계도 복잡한 이해관계자 생태계지만 우리나라처럼 이 모양은 아니다.”



그가 말한 ‘음악계’의 구조를 서울시향 사건에 적용해보자.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 간의 유교적인 지배 정서가 정명훈과 서울시향 직원, 그리고 음악인들 간의 유대관계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경찰 수사 이후 음악계 인사들 중에 최근 밝혀진 ‘팩트’(fact)를 문제 삼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 여전히 박 전 대표의 권위주의적 경영과 인권 유린은 변하지 않는 사실일 거라 말하는 인사들 일색이다. 그러나 경찰 조사에서 600여 차례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호소문 유포’를 지시한 정황이 확인됐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합리적으로 의심해 볼만한 여지가 충분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럴 분이 아니다’라며 맹신에 가까운 믿음을 보이는 건 무슨 의미일까. 짚어볼 필요가 있다. 박 전 대표의 주장처럼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음모에 가담한 범법자들이라면 그들이 인권유린을 논할 가치 역시 없을 테니까. 정명훈은 레드카펫을 밟으며 떠났다. 대지성인이자 작곡가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을 배경음악으로 깔고.

사건 이후 1년 3개월 정도 지난 지금, 박현정은 권토중래(捲土重來)의 꿈보다는 평범한 사람으로 조용히 살아가고 싶은 마음에서 진실 밝히기에 돌입했다고 했다. 나는 박현정의 진실이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이제부터가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주장대로 감정과 확증 편향으로 똘똘 뭉친 음악계가 과감한 자성의 목소리를 낼 기회가 될 것인지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김나영기자 iluvny23@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