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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안철수의 '여왕' 표현 적절한가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가 '여왕'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최근에는 새누리당 공천 갈등을 놓고 촌평 삼아 "여왕의 신하를 뽑고 있다"고 공격했다. '여왕'은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한 말인데 공당의 공천 과정이 민주적인 시스템에 의한 게 아니라 박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좌지우지된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실제 박 대통령과 척을 졌던 진영 의원이나 유승민 의원 등이 공천에서 탈락하거나 공천이 미뤄지고 있다. 현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을 지낸 황우여 의원도 자신의 지역구를 버리고 분구된 옆 지역구로 옮겨가서야 겨우 공천을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을 보면 누구나 '박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공천을 못 받았구나'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문제는 '여왕'이라는 단어의 선택이다. 과거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던 중세시대의 여왕과 같은 모습이 민주화된 사회에서 재연되는 것에 대한 비판이라고는 하지만 여왕이라는 단어를 나쁜 결과와 결부시키다 보니 부지불식간에 '여성 대통령은 나쁜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의 이미지가 여왕의 전유물은 아닌 것이다.

정치적 발언의 영향력이 큰 안 대표가 박 대통령의 제왕적 행태에 대해 '여왕'이라는 표현을 써서 쉽게 공격하려 한 것이겠지만 90명이 넘는 전 세계의 독재자 명단에서 여성의 이름을 찾을 수 있는가. 국내 역사에서도 여왕이 독재자로 몰렸던 사실을 찾을 수 있는가.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가해자든 피해자든 여성을 특정하는 것에 익숙하다. 여교수·여검사·여의사 같은 표현은 익숙하지만 남교수·남검사·남의사 같은 표현은 쓰지 않는 게 좋은 사례다. 이렇게 되면 좋든 나쁘든 '여성'에 대한 선입관이 생겨나기 쉽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피해자가 될 수 있고 가해자가 될 수 있음에도 방점이 찍히는 쪽은 여교수·여검사·여의사와 같은 '어떤 여성'이다.



박 대통령을 공격하는 단어 선택으로 '여왕'을 용인할 수도 있지만 '나쁜 가해자'로 여성이라는 점이 부각되는 것은 여간 우려스러운 게 아니다. 박 대통령을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표현하면 몰라도 '여왕'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반대하는 이유다. 안 대표의 단어 선택이 전체 여성 정치인을 좀 더 배려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4·13 총선에 예비후보로 등록한 여성의 숫자는 남성의 11.7%에 불과할 정도로 여전히 정치적 소수에 머물고 있어서다.

jpar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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