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님은 위험중립형이십니다.”
서울경제신문 기자가 종로 일대의 한 시중은행에서 일임형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관련 상담을 받자 은행원이 데이터 분석을 통해 알려준 결과다.
투자성향 측정법은 간단했다. 은행 측은 설문지를 주며 ‘투자수익 및 위험에 대한 태도는 어디에 해당하나’ ‘투자원금 손실이 발생할 경우 감수할 수 있는 수준은 어느 정도 인가’ ‘금융상품 투자에 대한 지식수준은 어떻게 되나’ 등 총 9개의 객관식 문항을 선택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은행이 산출한 기자의 투자성향 점수는 56점으로 ‘위험중립형’에 해당했다. 안정·안정추구형에 비해서는 공격적이지만 적극·공격투자형에 비해서는 위험 선호도가 낮은 중간 단계다.
해당 은행은 43점 이하는 ‘안정형’으로, 81점 이상은 ‘공격투자형’으로 분류했으며 각 투자성향별 모델포트폴리오를 1~3개 정도 갖춰 가입을 권했다. 예를 들어 기자가 속한 위험중립형은 세 가지 모델포트폴리오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데 우량 배당주 위주 상품, 국공채 기반의 해외 기업 투자 상품, 공모주 등의 대안 상품에 투자하는 상품 중 고를 수 있게 했다.
11일 국민·신한·우리·기업은행 등 4개 은행이 일제히 일임형 ISA를 출시하며 본격적으로 시장 장악에 나섰다. 지난달 14일 신탁형을 출시한 데 이어 사실상 ISA 대전 2라운드가 펼쳐진 셈이다. 은행들은 내부적으로 자산운용 인력을 충원하고 일선 지점 입구에는 일임형 ISA 출시를 알리는 광고판을 걸어두는 등 고객 눈길을 붙잡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었다.
반면 고객들의 반응은 아직 시큰둥했다. 실제 서울경제신문이 종로 일대 은행 네 곳을 방문한 결과 번호표를 뽑지 않고도 일임형 ISA 가입이 가능했다. 특히 신탁형 ISA 판매시 불완전판매 논란이 있었던 탓인지 무조건적인 상품 가입보다는 신중한 가입을 권하는 이들이 많았다. 고객 확인서와 가입자 적격 여부 확인서 등에 대해서도 밑줄을 그어가며 일일이 설명하는 등 혹시나 모를 불완전판매 가능성을 차단하는 모습이었다. 신탁형 ISA 판매가 시작됐던 지난달 14일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시중은행 창구 직원은 “오전 동안 일임형 ISA에 가입한 고객은 1명에 불과했으며 이 고객 또한 만기가 돌아온 예금을 어디다 굴릴지 고민하다 가입한 것”이라며 “이 같은 분위기는 여타 지점에서도 모두 비슷하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은행이 투자에 대한 책임을 모두 져야 하는 일임형 상품의 특성이 이 같은 분위기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같은 이유로 신한은행과 기업은행은 초고위험군 일임형 ISA를 아예 출시하지 않는 등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이 때문에 모델포트폴리오 또한 우리·국민이 10개인 반면 신한·기업은 7개에 불과하다. 반면 투자에 대한 책임을 고객이 모두 떠안는 신탁형 상품 가입을 문의하자 주가연계증권(ELS)과 같은 공격적 상품에 대한 권유가 대부분일 정도로 차이가 컸다.
운용수수료는 위험도가 높아질수록 올라가는 구조로 은행별로 다소간 차이가 났다. 은행들은 초저위험 상품군의 수수료율은 모두 0.1%로 정한 반면 최고 수수료율은 우리·기업은행이 0.5%로, 국민·신한은행은 0.6%로 각각 정하는 등 차이를 보였다. 단 이같이 은행에 지급해야 하는 운용수수료 외에 자산운용사에게 별도의 수수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잘 따져보고 가입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전체 ISA 가입자는 지난 8일을 기준으로 139만4,287만명을 기록했으며 가입자의 91%가 은행 가입자로 나타나는 등 은행들이 증권사들을 압도하고 있다. 가입금액은 신탁형에 8,610억원, 일임형에 154억원이 각각 유입됐으며 은행이 이날 일임형 ISA 시장에 진출함에 따라 은행권의 활약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양철민·강동효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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