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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사이다와 고구마

임석훈 논설위원

4·13 총선, 불통 국정운영에 경고

마치 사이다 마신 듯 청량감 느껴

소통의 대통령·국회로 이어지길

ㅇㅅㅎ




몇 해 전 연말 모임이 한창일 때 지인에게 근사한 건배사를 서너 개 가르쳐 달라고 졸랐다. 이런저런 술자리에 가다 보면 건배사 덕담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마땅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고민하더니 그는 두 가지를 일러줬다. 꽤 반응이 괜찮을 거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중 하나가 ‘사이다’다. 순간 생각나는 것은 L사의 음료수뿐. 무슨 고매한 뜻이 있는지 물었다. 연인이나 와이프한테 점수를 딸 수 있을 거라는 너스레를 떨며 들려준 낱말 풀이는 ‘사랑한다, 이 생명 다하도록’. 어감 그대로 달달하다. 실제로 모임에서 얘기했더니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사이다를 외치자 따라 하면서 뜻이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조금 과장해 설명해주는 재미가 쏠쏠했던 기억이 난다.

잊고 지내던 사이다라는 단어를 최근 집에서 들었다. 애들이 대화하면서 자주 썼던 것. 반가운 마음에 무슨 뜻인지 물어봤다. 연말 모임에서 요긴하게 애용했던 ‘사·이·다’와는 색달랐다. 체하거나 답답할 때 사이다를 들이키면 시원한 기분이 든 것처럼, 말이나 행동·상황이 사이다를 마신 듯이 후련하게 해소될 때를 사이다라고 한단다. 통쾌할 정도로 기분이나 속이 뻥 뚫리면 ‘핵사이다급으로 좋다’고 하는 모양이다. 가끔 운동한 뒤 맥주에 사이다를 탄 이른바 ‘맥사’를 마셨을 때 느꼈던 청량감이 언뜻 스쳤다. 바로 그런 기분이겠거니 하면서 고개가 끄떡여졌다.

더 많은 정보가 있을까 싶어 인터넷에서 사이다를 검색해봤다. 핫(hot)한 유행어, 대세어(語)였다. 신문 헤드라인에서도 종종 등장할 정도로. 나만 모르고 있었나, 시대에 뒤떨어졌구나 하는 민망함이 살짝 들었다. 음지에서 떠돌던 사이다가 널리 퍼진 것은 지난해부터인 듯하다. 언어는 시대상의 반영이라고 했던가.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이 얼마나 답답했으면 이런 말이 대세어가 됐을까 생각하니 씁쓸하다. 꽉 막힌 현실을 뚫어줄 리더·영웅의 탄생을 바라는 간절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반대말이 있을 텐데. 고구마. 먹을 때 목이 막혀서 답답하기 때문이란다. 쓰임새가 많이 다른 듯해 보이지만 넓게 보면 ‘헬조선’과 일맥상통하지 싶다. 취업난·전세난에 시달리는 서민들의 고단한 삶이 떠오른다. 단맛 나는 고구마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도 하지만 제법 들어맞는 비유인 것 같다.



사이다와 고구마의 응용범위는 한계가 없고 거침이 없다. 어떤 상황이든 대입하면 그럴듯하다. 지루하게 전개되는 드라마는 ‘고구마 드라마’, 반대인 경우는 ‘사이다 드라마’ 이런 식이다. 정치를 끼워 넣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촌철살인이랄까. 4·13 총선 결과에 대한 해석에서도 사이다는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대한민국의 주인은 역시 국민이다’라는 것을 보여준 그야말로 ‘사이다 선거’”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국민의 뜻을 무시한 오만하고 독선적인 국정운영과 경제실정을 국민들이 표로 심판한 거라면서 한 말이다. 정부·여당의 불통에 대해 시원하게 경고한 선거라는 뜻으로 읽힌다.

대통령이나 여당 지지자들은 섭섭할지 모르나 여소야대의 선거결과를 사이다로 받아들이는 국민들이 상당수인 것을 보면 틀리지 않은 분석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총선에 나타난) 민의를 겸허히 받들어 국정의 최우선순위를 민생에 두겠다”고 했으니 사이다 선거가 맞긴 맞는 모양이다. 황교안 국무총리 역시 “국민의 뜻을 엄중히 받들어 사회 각계와 폭넓게 소통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모처럼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소통에 나선 듯해 반갑다. 실천이 뒤따르면 금상첨화이지 싶다. ‘사이다 선거’를 계기로 국민들의 속을 확 풀어줄 ‘사이다 대통령’ ‘사이다 국회’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지난 3년간 고구마는 실컷 먹었으니 이제 사이다를 마셔야 되지 않겠는가. ‘국민의 뜻을 받든다’는 게 진심이라면 가능할 것이다. /shim@s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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