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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효자의 기억 속 붕어빵

[식담객 신씨의 밥상] 일곱번째 이야기-붕어빵

식담객 신씨의 밥상




출근길은 항상 즐겁습니다. 우리 집은 버스종점 직전 정류장 인근이라, 회사까지 편하게 앉아서 올 수 있습니다.

차 창밖 풍경을 바라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공원과 개천을 지날 때면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철 따라 날씨따라 변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옷차림을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때론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며 글감을 얻기도 합니다.

지금껏 들려드린 밥상 이야기들은 모두 출근길 버스 안에서 써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지하철을 타면 출근 시간을 15분 가까이 줄일 수 있지만, 이 여유로운 상상 공간과 바꾸고 싶지는 않습니다.

회사를 앞두고 마음을 추스를 무렵이면, 왼편에 작고 예쁜 카페 자리가 나옵니다. 고급스런 붕어빵을 팔던 곳이었는데, 어느 날 매장이 사라졌습니다.

아주 정겨웠던 붕어빵의 추억이 떠오릅니다. 2011년, 여름으로 향하던 무렵이었습니다.

회사 인근에 있는 식당에서 사장님과 과장, 대리급 직원 예닐곱 명이 함께 저녁을 먹었습니다.

수산물 유통업을 하시는 친척 어른께서 보내주신 자연산 돔과 개불에 해삼까지 더해져, 밥상이 푸짐했습니다.

멋있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이 만나면, 분위기가 더 흥겨워지기 마련입니다.

어느새 우리는 사장님을 ‘선배님’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선배님께서 십수 년 전 공장에 계실 때 고생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당시 선배님은 새로운 공장 건설을 맡으셔서, 현장에서 밤을 새는 날이 잦았습니다. 시간이 날 땐 현장 근로자들과 막걸리 사발을 기울이며, 지친 이들의 마음을 다독이곤 했답니다.

“사모님께서 서운하셨겠습니다?”

한 직원의 말에 선배님이 빙긋 웃으십니다.

“그땐 안 그랬는데, 얼마 전에 집사람이 서운하다고 얘기하더라구. 장인어른은 퇴근길에 양과자나 과일 같은 거 사오셨는데, 나는 왜 맨날 빈손이냐고.”

생각지 못했던 말씀에 직원들이 조심스레 쿡쿡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습니다.

“그래서 요즘엔 퇴근할 때 가끔 먹을 거 사가. 좋아하더라구. 진작 그럴걸. 아자부 붕어빵이란 거 사갔는데 맛이 꽤 괜찮더라.”

그 말씀에 대리 한 친구가 갑자기 입을 뗍니다.

“선배님, 저희도 붕어빵 잘 먹습니다!”

선배님이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 표정을 지으시더니, 담당 운전기사님을 부르십니다.

“여기 있는 친구들 집에 가져가게 붕어빵 좀 사다줘. 여기서 우리 먹을 거랑 서빙하시는 분들 것까지 넉넉하게.”

30여 분이 지나 기사님이 도착하십니다. 한 개에 3,000원짜리 붕어빵이 있다는 걸, 그리고 붕어빵도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산뜻한 달콤함에 질감도 깔끔해, 입 안에 잔맛이 남지 않습니다.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데, 어느새 세 개째 입에 넣고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맛있게 드실 모습을 상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렙니다.

식당에서 나와 독한 술을 마시러 갑니다.

술이 술을 마시는 상황에 접어들었는데도, 작은 종이상자에 든 붕어빵 네 마리가 걱정돼 수시로 안위를 확인합니다.

이튿날 아침, 북어국이 상처받은 속을 위로합니다.

“무슨 술을 그렇게 마시고 다녀? 그러다가 병나겠다.”

“사장님이랑 저녁 먹었어요. 참, 사장님께서 어머니 드리라고 붕어빵 사주셨어요. 이름이 ‘아자뵤’던가?

”아, 아자부. 그거 맛있는데. 사장님께 감사하다고 인사 전해 드려.“

어머니께서 김치냉장고 위에 놓아둔 붕어빵 상자를 여십니다.

”아들, 붕어들이 밤새 탈출했나 보다. 심하게 다친 애 한 마리만 있네.“

엥? 상자 안을 들여다 봅니다.

하반신을 잃은 붕어빵 하나만 덜렁 남아있습니다.

어떻게 된 거지!

급하게 기억을 재구성합니다.

아, 마지막 차에 소주 안주로 붕어빵을 먹으며 주인 아주머니께도 하나 드렸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어머니가 생각 난다며.

정작 어머니께 드린 건 붕어빵 반 마리~

밥상 위로 서먹한 바람이 붑니다. ‘후루룩’ 북어국 마시는 소리만 적막을 깹니다.

그렇게 불효자는 가슴에 참회의 눈물을 떨구며, 퇴근길에 붕어빵을 사가겠노라 다짐했습니다.

/식담객 analogoldman@naver.com



식담객 신씨는?

학창시절 개그맨과 작가를 준비하다가 우연치 않게 언론 홍보에 입문, 발칙한 상상과 대담한 도전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 어원 풀이와 스토리텔링을 통한 기업 알리기에 능통한 15년차 기업홍보 전문가. 한겨레신문에서 직장인 컬럼을 연재했고, 한국경제 ‘金과장 李대리’의 기획에 참여한 바 있다. 현재 PR 전문 매거진 ‘The PR’에서 홍보카툰 ‘ 미스터 홍키호테’의 스토리를 집필 중이며, PR 관련 강연과 기고도 진행 중이다. 저서로는 홍보 바닥에서 매운 맛을 본 이들의 이야기 ‘홍보의 辛(초록물고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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