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17대 임금 인종은 외할아버지 이자겸의 기세에 눌려 제대로 제왕 역할을 할 수 없었다. 당시 이자겸의 권세가 인종을 능가할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이자겸의 횡포에 시달리던 인종은 마침내 그를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인종 5년인 1126년 인종은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김찬·안보린 등을 동원해 거사를 실행에 옮긴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이자겸과 그의 측근인 척준경 세력의 반격에 밀려 인종의 친위 쿠데타(self-coup)는 실패로 돌아간다.
인종처럼 최고 통치자가 자신의 권력 기반을 되찾거나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측근 세력을 조종해 정변을 일으키는 친위 쿠데타의 역사는 깊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유사 사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영국과 일본도 역사상 몇 차례의 친위 쿠데타를 경험했다. 영국의 경우 찰스1세가 전제왕권을 회복하려고 스코틀랜드와 공모해 친위 쿠데타를 벌였으나 실패해 올리버 크롬웰에게 체포돼 사형당하기도 했다.
일본도 근세 들어 명목상의 국가원수 메이지 텐노가 조슈·사쓰마 지역 세력의 지원을 업고 실질적 권력이었던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고 친정체제를 선포한 바 있다. 냉전이 종식된 후에는 아프리카나 동구권 등지에서 종종 친위 쿠데타가 일어나고는 했다. 지난 15일 밤 터키에서 발생한 쿠데타가 현 집권 세력이 기획한 자작극, 즉 친위 쿠데타라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19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떠도는 자작극의 근거를 보도할 정도다. FT는 터키인 10명 중 3명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기획작품으로 여긴다는 조사 결과도 실었다. 수시간 만에 제압된 쿠데타 세력의 어설픈 작전, 에르도안 대통령이 쿠데타 진압과 동시에 신속하게 반대파 제거에 나서고 있는 점 등이 음모론의 근거다. 실제로 터키에서는 군과 법조계에 이어 교육계에도 숙청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한다.
20일에는 3개월간의 국가 비상사태까지 전격적으로 선포할 만큼 터키 정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 기획설이 마냥 허투루 들리지는 않는다. 음모론까지 가세하면서 당분간 터키 정세는 격랑이 불가피할 것 같다. 한국전쟁에 참전해 우리를 도운 형제국 터키의 혼란상에 마음이 무겁다.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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