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난’을 벌인 박삼구·찬구 회장의 갈등이 봉합되기까지 7년의 세월이 흘렀다. 긴 시간 동안 10여 건의 법적 소송을 벌였지만 두 형제는 이제 ‘각자의 길’을 택하기로 했다. 올해로 창립 70주년을 맞이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형제간 화해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무엇보다 그룹 재건을 위한 마지막 퍼즐로 불리는 금호타이어 인수전을 앞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동생과의 화해로 한결 몸이 가벼워졌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역시 “글로벌 경제 상황과 경쟁 여건의 불확실성과 불안은 더 높아지는 추세로 한국 경제를 위태롭게 하고 있고 이에 따라 산업별 구조조정의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의 많은 기업이 생사의 위기에 처해 있다”며 “금호석화는 이러한 상황이 서로의 생사 앞에서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히는 등 다툼 대신 회사 경영에 매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금호 주변에서는 금호타이어 인수 등을 위한 실탄 마련 과정에서 박찬구 회장이 모종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같은 줄기에서 두 형제의 화해 직후 금호타이어 공동 인수설도 제기된다.
◇두 형제 갈라놓은 대우건설 인수=형제간 다툼은 지난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9년 7월28일 박삼구 회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동생인 박찬구 화학 부문 회장이 공동경영 합의를 위반해 해임 조치를 단행했다”면서 “동생을 해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도의적 책임을 지고 그룹 회장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박삼구 회장은 명예회장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표면상 박삼구·찬구 형제가 동반 퇴진하는 모양새였지만 사실상 형이 동생을 쫓아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2006년 대우건설, 2008년 대한통운을 인수하며 몸집을 불려 온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금융위기로 유동성 위기에 빠진 것이 발단이 됐다. 당시 금호산업 지분을 전량 매각하고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대폭 늘리는 방식으로 계열 분리를 추진했던 박찬구 회장에 대해 박삼구 회장은 “형제 경영의 원칙을 깼다”며 동반 퇴진이라는 초강수를 꺼냈다.
이후 금호가(家) 형제의 법적 공방은 끊이지 않았다. 100억원대 CP 반환 청구 소송, 금호 상표권 소송 등 크고 작은 것까지 합치면 7년간 91건의 소송전을 벌였다. 피소금액은 2,000억여원에 달한다.
일각에서는 최근 불거진 금호터미널 실사 보고서 조작 논란이 두 사람의 화해를 이끄는 계기가 됐다는 시각도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금호터미널 매각과정에서 가격 산정의 근거였던 실사 보고서에 대한 진위 논란에 대해 검찰이 수사 움직임을 보이면서 형제가 화해를 위해 접촉을 했다”고 전했다.
◇새 국면 맞은 그룹 재건=두 형제간 갈등이 종결된 가운데 금호터미널과 금호기업의 합병이 마무리되면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새 지주회사인 금호홀딩스가 12일 공식 출범한다. 금호홀딩스는 박삼구 회장과 김현철 금호터미널 대표 2인의 각자 대표이사 체제로 꾸려진다.
금호석화가 아시아나항공 100% 자회사였던 금호터미널이 금호기업에 헐값 매각됐다고 문제 삼았던 점이 해소되면서 금호홀딩스는 경영부담이 줄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새 지주사를 중심으로 금호타이어와 금호고속 인수 작업을 펼친다는 입장이다.
두 형제가 화해하면서 금호타이어 인수전도 새 국면을 맞았다.
박삼구 회장은 그룹 모태기업인 금호고속을 되찾기 위해 전문투자형 사모펀드(헤지펀드)를 통해 금호터미널의 금호고속 인수대금 1,500억원 가운데 1,000억원을 유치하는 데 성공하는 등 그룹 재건을 위해 힘쓰고 있다. 하지만 오는 9월부터 채권단 매각절차가 들어가는 금호타이어 인수에 박 회장이나 현재 금호그룹 단독으로 1조원이 넘는 자금을 마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채권단이 박 회장이 타이어에 대해 갖고 있는 우선매수권을 제3자에게 양도할 수 없도록 하면서 금호아시아나 인수 당시 사용했던 방식도 불가능하게 됐다.
박 회장 형제가 극적으로 화해하게 된 것도 이런 상황과 연결돼 있을 것으로 시장에서는 짐작하고 있다. 손을 잡지 않고는 그룹 재건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나왔다는 것이다.
이런 줄기에서 업계에서는 박삼구 회장 측이 박찬구 회장에게 금호타이어 공동 인수를 제안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그룹 재건을 마무리한 후 일정 계열사를 박찬구 회장이 맡을 수 있다는 얘기도 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는 모두가 ‘추측’일 뿐이다.
업계 관계자는 “형제간 다툼으로 7년이란 시간을 허비한 두 형제가 회사 창립 70주년이라는 뜻깊은 해에 화해하고 각자 경영에 매진하기로 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며 “두 회사가 단순히 화해에 그칠 것인지, 힘을 합칠 것인지는 인수전 과정에서 보다 명확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재원기자 wonderfu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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