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그래도 술인데 알코올도수가 너무 낮으면 시장에서 외면받지 않겠어요?” “전 세계적으로 저도주가 유행이고 이제 우리나라도 가볍게 한잔하는 음주문화가 확산될 겁니다.”
지난해 5월 보해양조(000890) 마케팅팀 회의실에서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시제품으로 개발한 저도주를 정식으로 출시하느냐를 놓고 직원들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렸다. 이대로 제품화하면 실패가 뻔하다는 주장과 이색적인 제품인 만큼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목소리가 팽팽히 맞섰다.
제품 출시를 찬성한 직원들도 자리 앞에 놓인 시제품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존에도 국내에 여러 주류업체들이 저도주를 내놨지만 화이트와인을 사용하고 알코올도수를 3도로 낮춘 제품은 처음이었다. 유리병이 아닌 페트병에 담긴 것도 특이했다. 술이라 부르기에는 너무 순하고 그렇다고 음료수도 아닌 ‘정체불명’의 제품이었다.
한동안 고민을 거듭하던 보해양조 마케팅팀은 마침내 제품 출시를 결정했다. 대신 젊은 세대를 겨냥해 개발한 만큼 기존에 없던 파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기로 의견을 모았다. 당시 주류시장을 강타했던 과일맛소주 열풍이 주춤해지는 시점이어서 출시일도 최대한 앞당기기로 했다. 국내 주류시장에 탄산주 열풍을 불러온 ‘부라더소다’는 그해 9월 조용히 시장에 모습을 내밀었다.
주류시장 최대 성수기인 여름을 넘겨 ‘여름 특수’도 기대하지 못했지만 부라더소다는 출시되자마자 돌풍을 일으켰다. 당장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독특한 이름과 제품 포장이 화제를 모았다. 알코올도수를 3도로 맞춘 것도 절묘했다. 술자리가 부담스럽거나 술을 잘 못 마시는 소비자들로부터 호평이 쏟아졌다. 소다의 달콤함과 탄산의 톡 쏘는 맛이 잘 어우러졌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부라더소다는 품절 사태를 빚기도 했다.
한번 보면 눈에 쏙 들어오는 독특한 제품명도 부라더소다의 성공 비결로 꼽힌다. 제일 처음 출시된 부라더소다에 이어 ‘복받은 부라더’(복분자), ‘딸기라 알딸딸’(딸기), ‘풋사과라 풋풋’(사과), ‘요거슨 욕구루트’(요구르트), ‘빠담빠담 빠나나’(바나나) ‘자, 몽마르지?’(자몽) 등이 대표적이다. 익살 맞으면서도 재치있게 제품을 특성을 표현한 전략이 거부감 없이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는 평가다.
올해 3월 선보인 ‘부라더 하이볼’도 고정관념을 깨트린 파격적인 제품이다. 이 제품은 국내 주류업계 최초로 선보인 저도 하이볼 위스키로 위스키를 멀리하던 젊은 남성 고객을 겨냥했다. 하이볼은 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대중화된 주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해 제대로 된 제품이 없었다. 알코올도수가 9도로 낮고 캔 용기를 채택해 다른 술과 섞어 마시거나 칵테일 등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부라더소다는 향토 주류업체라는 한계를 넘지 못하던 보해양조에게도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됐다. 출시 1년 만에 저도 탄산주의 대표주자로 올라섰고 대형 주류업체에 밀려 시도하지 못했던 수도권 영업망을 새로 짜는 기반까지 마련했다. 부라더소다의 성공으로 보해양조는 ‘젊고 톡톡 튀는 주류회사’라는 브랜드 이미지까지 덤으로 얻었다.
부라더소다가 열어젖힌 탄산주시장은 올 들어서 기존 주류업체까지 가세하면서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반짝 인기에 그칠 것이라던 탄산주가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자 저마다 신제품을 출시하고 주도권 경쟁에 나선 것이다.
하이트진로(000080)는 알코올도수 3도의 ‘이슬톡톡’을 출시하고 부라더소다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가수 아이유를 광고모델로 활용하고 소주 브랜드 ‘참이슬’과 연계한 마케팅으로 가파르게 점유율을 늘리고 있다. 탄산이 상대적으로 강해 여성 고객들의 선호도가 높다는 게 특징이다.
롯데주류도 ‘설중매 스파클링’과 ‘순하리 소다톡’으로 출사표를 던졌다. 알코올도수 10도의 설중매 스파클링은 매실주 설중매에 탄산을 넣고 중장년층도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순하리 소다톡은 화이트와인에 사과과즙을 넣어 경쾌한 청량감을 살렸다.
중견 주류업체들도 잇따라 탄산주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무학(033920)은 각종 열대과일을 넣어 이색적인 맛을 살린 ‘트로피칼 톡소다’를 선보였고 금복주도 탄산주 신제품 출시를 준비 중이다. 지난 6월에는 일본 대형 주류업체 산토리도 탄산주 ‘호로요이’를 선보이며 국내에 진출했다. 지난 2009년 출시된 호로요이는 10가지 넘는 다양한 맛을 앞세워 지난해 일본에서만 9,000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주류업계는 탄산주 열풍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내다본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폭탄주 대신 가볍게 한잔하는 음주문화가 확산되고 있고 경기침체로 집에서 술을 마시는 ‘홈술족’과 혼자 술을 즐기는 ‘혼술족’ 등이 갈수록 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달부터 시행되는 김영란법의 영향으로 저렴한 술을 찾는 고객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일각에서는 장기적으로 탄산주시장 규모가 전체 소주시장의 10% 수준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는다.
보해양조 관계자는 “기존에도 국내에 탄산주가 있었지만 ‘부라더소다’가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이색적인 마케팅으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했다는 점에서 고객들이 좋은 평가를 해준 것 같다”며 “66년 역사의 양조 기술력을 발판으로 앞으로도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다양한 신제품을 선보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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